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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게놈 시대 개막… '생명을 디자인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9면

'포스트 게놈' (Post Genome)시대가 시작됐다.

인간 게놈(유전체)에 대한 서열 분석 결과가 속속 발표되면서 유전자 활용을 중심으로한 생명과학의 새장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차세대 생명과학을 이끌 포스트 게놈 연구와 그 파장을 앞서 짚어본다.

◇ 복제가 아니라 이제 창조다〓한국과학기술원 김선창교수는 최근 야심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른바 생명 창조. 그는 연구인생을 건다는 각오로 이 주제에 팔을 걷어 부쳤다.

"새로운 대장균같은 인공(人工)균을 만들어 보이겠습니다. 시간은 다소 걸리겠지만 생물학에 새 지평을 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명 창조는 10여년전만 해도 감히 꿈꾸기 어려웠던 주제. 그러나 게놈연구가 급진전하면서 기술적으로 가능해졌다.

김교수의 계획은 이렇다.

대장균 유전체의 기능 분석→새로운 유전체 합성(불필요한 유전자 제거.연구진이 의도한 유전자 삽입)→세포질에 합성 유전체 주입→새 인공균(대장균)탄생.

이러한 연구가 가능해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대장균 유전자의 염기서열 분석이 완전히 끝났기 때문. 김교수는 미국 위스콘신대 블래트너박사팀이 지난 1998년 사이언스를 통해 공개한 염기 서열 분석 결과를 활용할 예정이다.

대장균은 게놈 분석결과 4백63만개의 염기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다. 30억개나 되는 사람에 비하면 훨씬 작은 숫자다.

그러나 4백63만개의 염기중 생명활동 즉 복제.대사 등에 필요한 염기는 아무리 많아도 절반 이하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김교수는 "대장균이 진화과정에서 다양한 환경에 적응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많은 유전자를 갖게 됐다" 며 "불필요한 유전자를 빼내는 대신 산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유전자를 집어넣음으로써 새 생명체를 제조할 것" 이라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대장균의 조상 추정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생명 창조는 복제와는 기술적으로 차이가 크다. 예컨대 체세포 복제양 돌리를 만든 영국팀은 기존의 체세포 핵과 세포질 등을 이용했다.

체세포 복제는 아직 그 과학적 원리가 분명하게 규명된 것이 아니다.

이와는 달리 유전자를 이용한 생명창조는 유전자 개개의 기능을 알고 이를 합성해 생명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따라서 체세포 복제는 똑같은 개체 밖에 만들 수 없지만 생명 창조는 생명을 디자인할 수 있다.

예컨대 엄마와 머리카락 색깔만 다른 자식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 생물학이 주도하는 신학문.신산업이 뜬다〓크지않은 회사인 미국의 세레라사가 미국립보건원(NIH)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엄청난 숫자의 인간 유전자 염기 서열 분석을 끝낸 데는 슈퍼컴퓨터의 덕이 컸다.

생명공학연구소 이대실박사는 "세레라사가 보유한 슈퍼컴은 우리나라 최고 성능의 슈퍼컴보다 1백배쯤 성능이 뛰어난 것" 이라며 "생물정보학의 뒷받침의 없다면 포스트 게놈시대는 남의 나라 일일 뿐" 이라고 말했다.

수십억개에 달하는 DNA 염기를 분석하고 이들을 해석.가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만 신산업을 창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로봇과 유전공학과 결합으로 탄생할 '바이오로보틱스' 나 반도체 공학과 생명공학의 결과물인 생체칩 기술도 생물학 주도의 신학문으로 사회와 경제에 엄청난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 포스트 게놈 시대를 위한 준비가 없다〓최근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토니 블레어 영국 수상을 만난 자리에서 인간 유전자의 염기 서열 분석 결과를 무상으로 공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기반으로는 서열 분석 결과를 입수하더라도 쓸모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전자가 '의미' 를 갖기 위해선 그 기능을 알아야하는데 단순한 염기 서열만으로는 기능을 분석해낼만한 토대가 국내에 마련되지 않은 실정이라는 것. 그나마 특허청이 서열 만으로 특허를 인정하지 않을 방침이 다행이라고 위안을 삼는 정도다.

특허청 이성우 유전공학과장은 "특허청은 최근 유전공학심사 가이드라인에 따라 기능이 밝혀지지 않은 염기 서열은 발명이나 아이디어로 볼 수 없기 때문에 특허를 내주지 않을 것" 이라며 "국내 연구자들은 기능을 밝히는데 주력해달라" 고 주문했다.

보건복지부.산업자원부.농림수산부 등 정부도 이 분야의 중요성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비판도 있다.

인간 유전체 연구가 신약개발과 차세대 의학을 리드할 것이 뻔한데도 보건복지부의 지원은 극히 미미한 실정. 병원이나 의과대학도 투자 여력을 이유로 유전자 연구를 게을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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