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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삼국지' 끊임없는 인기, 그 비결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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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삼국지가 끊임없이 읽히고, 팔리고, 찍혀나오고 있다.

소설가 이문열씨가 평역한 삼국지(10권)가 1987년 출간이후 1천만부 판매라는 기록을 세운 가운데 최근 삼국지를 축약한 요약본과 관련 용어.인물을 해설한 사전, 원전의 시편까지 꼼꼼히 챙긴 완역본 등이 잇따라 출간되고 있다.

삼국지를 6백60쪽 한 권으로 축약한 '에센스 삼국지' (해누리.1만5천원)는 2월말 출간한지 보름만에 재판을 찍었다.

출판사측은 "이문열씨의 삼국지가 지금도 매월 5~6만부씩 팔리고 있는데다 워낙 삼국지라는 책 자체가 스테디셀러여서 초판을 적게 잡았는데 예상외" 라고 말한다.

'에센스 삼국지' 를 편역한 이동진(외무부 본부대사)씨는 "삼국지는 누구나 한번쯤 읽고 싶어하고, 또 읽고 나면 다시 읽고싶어지는 고전이지만 요즘 같이 바쁜 세상에 너무 양이 방대하다는게 약점이다.

그래서 한 권으로 축약해 냈다" 고 말했다. 이런 취지에 따라 '에센스 삼국지' 는 큰 줄거리를 제외한 장면들을 과감히 생략하고 각종 주석을 본문 중에 해설식으로 포함했다.

최근 출간된 '삼국지 사전' (범우사.3만원)은 삼국지와 관련된 3천3백여 항목을 담은 책. 국내 최초의 삼국지 사전이다.

중국에서 10년전 선보인 사전을 삼국지 전문가인 정원기(경북외대 중국어과)교수등 중국 전문가 3명이 2년6개월간 옮겼다.

사전은 소설속의 등장인물.줄거리등 직접 관련된 항목 1천4백76건 외에 고사성어.지명.관직명등 역사상식에 속하는 항목 1천2백14건, 소설 삼국지를 개작한 각종 드라마나 영화.음악.그림 등과 관련된 4백18항목 등을 담고 있다.

출판사 관계자는 "삼국지 독자가 워낙 많아 우리에게도 이런 사전이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고 말했다.

삼국지 주인공을 포함한 중국의 영웅얘기를 담은 '영웅의 역사' 를 펴낸 솔출판사는 나관중의 원본 삼국지에 충실한 완역본을 준비중이다.

성균관대 교수였던 한문학자 김구용씨가 74년 발간했던 삼국지를 개작한 '완역본 삼국지' 10권을 곧 선보일 예정이다.

삼국지의 맛을 제대로 느끼려면 원본에 실린 시편 하나까지 모두 담아야한다는 취지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화여대 이인화 교수(국문학)는 "동양의 역사학은 철저한 인물연구다. 개성이 뚜렷한 인물상이 어느 시대에나 있을 법한 얘기속에서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 소설 삼국지다. 요즘 현실이나 생활, 또는 파워게임의 정치와 전혀 다를 바 없어 수백년간 계속 읽히는 것" 으로 분석했다.

'에센스 삼국지' 를 편역한 이동진씨는 "어느 사회에서나 좌절감을 느끼는 다수들은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기 마련인데, 삼국지는 바로 이런 영웅의 전시장과 같다.

독자들은 각자 영웅을 기다리는 마음에서 책 속의 영웅들을 읽는 듯하다" 고 말했다.

삼국지가 잘 팔리는 데는 작품 외적인 면도 작용하고 있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삼국지는 특히 신학기를 전후해 많이 팔린다. 학생들이 교재와 함께 사가거나, 입학.졸업 선물로 많이 나간다. 삼국지를 논술준비를 위한 참고서로 가장 많이 사용한다는 설문조사결과도 있다" 고 밝혔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수십종의 삼국지 중 대표작은 무엇일까. 이교수는 60.70년대에는 월탄(月灘)박종화의 삼국지, 80.90년대에 이문열의 삼국지를 꼽는다.

"월탄의 삼국지는 정통 역사소설로서의 완결판이고, 이문열의 삼국지는 정치사적 접근" 이라는게 그의 풀이다.

소설가이기도 한 이교수는 "21세기에 맞는 새로운 삼국지를 쓰고싶다" 며 "이는 문화.풍속 중심의 삼국지" 라고 말했다.

삼국지의 시대적 배경인 3세기 전후는 동아시아, 특히 중국에서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생산력이 급성장한 시기이므로 문화.풍속에 촛점을 맞추면 새 시대에 걸맞는 삼국지가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삼국지 열풍은 이래저래 끝이 없을 듯하다.

오병상 기자

소설 삼국지는 원말.명초의 나관중(羅貫中)이라는 천재작가의 단독 창작물이 아니라 1천3백년간 중국인들 사이에 회자되면서 만들어졌다.

3세기 중국 진(晋)나라 역사가 진수(陳壽)가 쓴 정사(正史) '삼국지' 가 그 출발점이다.

진나라는 삼국중 위(魏)나라의 법통을 이은 나라이기에 정사 삼국지에서는 위나라가 한(漢)나라의 정통성을 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그런데 소설 삼국지에서는 한나라의 법통을 유비(劉備)의 촉(蜀)나라에 두고 있다. 이는 나관중이 살았던 16세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조조(曺操)가 간웅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삼국지의 등장인물에 대한 많은 일화와 인물평을 실은 책은 정사가 쓰여지고 1백년쯤 뒤인 남북조시대에 만들어진 '삼국지주' . 이 책에 실린 에피소드가 중국인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조조는 '머리는 좋으나 놀기를 좋아해 학문을 게을리하는 인물' 로 묘사된다.

삼국지가 널리 퍼진 시기는 송나라(960-1279년)시절. 당시는 호걸 장비(張飛)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16세기 원나라에서 연극으로 많이 퍼졌고, 희곡작가였던 나관중이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주인공으로 집대성한 것이 '삼국지연의', 즉 소설 삼국지의 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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