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진 '신국어독본' - 말을 법으로 묶을수 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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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국어는 어렵다. 매일 입으로 말하고 눈으로 읽지만 그래도 언제나 골치 덩어리다. 학생들은 시험과 논술 탓에 골머리가 아프고 어른들은 글 한편 써달라는 청탁이라도 받으면 좌불안석이다.

국어는 왜 어려운가. 국어를 쉽다고 말해주는 책이 없어서는 아닐까. 실제 국어학개론.국문학개론 같은 전공서적은 우리를 주눅들게 한다.

참고서나 학습서 전문 출판사들이 내놓는 도서는 대부분 논술 노하우나 국어 성적을 올리기 위한 것들. 국어는 어려우니 이렇게 저렇게 도전해야 한다는 것 뿐이다.

그렇다면 흔하게 볼 수 있는 '재미있는 과학여행' '쉬운 수학 읽기' 같은 개념의 국어교양서는 왜 찾아보기가 어려운가.

서울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4년간 일선 국어교사로 지금은 대학원에서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하고 있는 윤세진(30)씨가 내놓은 '신(新)국어독본' (푸른숲.7천8백원)은 쉬운 국어교양서의 갈증을 풀어줘 반갑다.

국어를 주제 삼아 학생들이 심드렁해하는 '언어의 벽' 을 톡톡 튀는 표현과 기발한 상상력, 그리고 무게 있는 주장으로 훌쩍 넘으려 하는 책이다.

한마디로 국어를 둘러싼 고정관념을 사정없이 걷어내고 읽기.쓰기를 새로운 시작에서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저자의 첫 주장은 '언어게임론' 에서 시작한다. 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수업시간에 주고받는 쪽지 언어로 '안뇽~, 진짜루 졸립다.

이따 끝나구 노래방 가까' 라는 게 있고 '어솨. 방가' 같은 통신언어가 있다. 또 '선생님. 저 오늘 과외가 있어 자율학습 못하거든요' 란 보편적인 말도 있다.

저자의 언어게임론은 언어란 다양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규칙인 만큼 각각의 말에다 문법 같은 고정관념의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된다는 것이 요지.

어떻게 쓰이고 소통되는지가 중요하지 맞느냐 안맞느냐고 다그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켜 국어를 어려운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설명이다. 곧 살아 춤추는 언어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비유적이고 아름다운 글, 논리적인 글을 써야한다는 교과서의 명언은 국어 사용자에게 공포를 주고 나아가 글을 못쓰는 '병신' 으로 만든다.

학교 문법에서 벗어나면 그건 국어가 아닌 예외로 취급하는 것. 이는 새로운 상황의 언어는 전혀 다른 규칙을 갖는 게임의 법칙을 무시하는 일이다.

실제 교사 생활을 하면서 학생들은 자신이 말하거나 쓰고 싶은 것이 있어도 논리적이거나 아름다워야 한다는 틀에 생각을 끼워 맞추다 보니 정작 할 말은 못하고 지쳐버리는 일을 허다하게 지켜 보아온 저자다.

윤씨는 표준어와 모국어, 한글전용뿐 아니라 욕설에 대해 갖는 편견까지도 던져버리고 과감하게 국어의 빗장을 열라고 말한다.

어떤 외국어도 우리말과 섞어 쓸 수 있으며 그것이 우리말을 풍부하게 한다는 저자는 정작 중요한 것은 한글이든 한문이든 그것을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인공위성(人工偉聲 : 사람이 만든 위대한 소리)이란 아카펠라 그룹의 경우 한자로 그룹의 이름을 사용하면 또 하나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효과가 있는데 굳이 한글전용을 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이다.

또 한마디 욕설이나 비어라도 시가 되고 노래가 된다면 그걸 인정해야 표현의 폭이 넓어진다는 논리다.

저자는 글을 쓰는 것은 절대적이 아니라 항상 상대적이며, 중요한 것은 주어진 것을 최대한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쓸 때마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나가는 것임을 일깨운다.

한 권의 책을 마무리 지으며 저자가 권하는 것-그것은 개성을 바탕으로 한 '탐사적 글쓰기' 에 대한 도전이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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