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당선무효판결' 실천이 중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대법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당선자들에게 원칙적으로 당선무효에 해당하는 벌금 1백만원 이상의 형을 선고키로 한 것은 부정선거 사범에 대한 엄중경고로 평가할 만하다.

또 재판에 출석하지 않는 의원을 직권으로 구인.구속영장을 발부하거나 체포동의안을 제출해 강제구인키로 한 선거재판 방침도 바람직한 방향이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총선을 앞두고 기승을 부리고 있는 불법.탈법 선거운동에 대한 사법부의 강력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선거 때만 되면 "당선만 되면 그만…" 이란 나쁜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실제로 선거법 위반으로 적발된다 하더라도 당선자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법망을 피해 임기를 채우는 게 보통이었고 선거법 위반으로 중도하차하는 경우는 이례적인 경우로 여겨질 정도였다.

이러니 입후보자들이 선거법을 우습게 여기게 되고 선거가 거듭될수록 불법.타락.혼탁이 기승을 부리는 악폐가 근절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법원도 절반의 책임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선관위나 법원.검찰 등은 단속기관일 뿐 언제나 마지막 결정권은 법원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15대 총선에서 당선무효된 의원 7명 가운데 확정판결까지 3년3개월이 걸린 사람도 있다는 것이 좋은 예다.

또 지난 총선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으나 의원직이 유지된 11명 중 8명이 80만원 벌금형을 받았고 이중 7명이 1심에서 1백만원 이상이었으나 2심에서 80만원으로 깎인 경우였으니 법원도 '당선자 봐주기' 에 일조한 셈이다. 심지어 1심 선고 후 의원직 상실위기에 놓였던 야당의원이 탈당한 뒤 2심에서 별다른 이유없이 80만원으로 벌금이 깎여 의원직을 유지한 예도 있다.

법원이 특정사건에 대해 일률적인 양형(量刑)기준이나 처리기준을 정해 행정적으로 시달하는 것은 물론 바람직하지 않다. 법관은 언제나 '법과 양심에 따라' 서만 재판해야 하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대법원의 이번 방침은 선거사범 처리에 대한 지금까지의 사법부의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겠다는 뜻도 내포했다고 봐야 한다.

사법부의 부정선거사범 엄단 방침이 엄포에 그쳐서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선거판 정화는 물론 사법권 독립을 위해서도 적극 사법주의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태국 선거위원회가 상원의원 당선자 2백명 중 78명에게 선거 보름 만에 부정행위를 이유로 당선무효를 선언하고 재선거를 명령한 것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