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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헬기 개발 왜 미적거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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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한국형 헬리콥터(KMH) 개발의 유보 결정을 지켜보면서 늦춰도 될 것과 서둘러야 될 것을 구별하지 못하는 정부 조치에 크게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형 헬리콥터 개발사업은 군 수요를 활용해 항공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자는 계획으로 국방부와 산업자원부가 협동하는 성숙하고 투명한 정부 사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한국의 항공산업 발전을 바라보는 외국의 눈길은 그리 편하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한국형 헬리콥터 개발사업의 험난함을 예고하고 있었다.

항공산업은 동북아시아의 주변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자주안보를 담보하는 필수조건이다. 또한 항공산업은 선진국의 독과점적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선진국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타의 추종을 완전히 차단하는 전략산업이다. 여기에 한국이 자체 수요와 자동차산업.정보기술(IT)산업으로 성숙한 기술을 바탕으로 자국 브랜드의 헬리콥터를 경제적으로 개발하겠다고 나선 지 3년이 됐으니 그동안 집요하게 작업해온 게 사실이다.

한국의 국내 사정은 그들이 작업하기에 매우 좋은 환경이었다. 통일을 위한 북한과의 교류가 일방적 짝사랑으로 진행돼 사회적으로 국산 헬리콥터 개발이 군비 증강으로 북한을 압박한다는 막연한 거부감이 깔리기 시작했다.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자는 작업은 시작도 하기 전에 식민시대나 군사정권 시절을 상기시키며 우리 국민 모두가 일궈냈던 과거의 공적을 폄하하는 바람에 자기 비하가 부추겨지고, 경제성장의 방법론에 대한 자신감 상실이 도를 더해가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한국형 헬리콥터 사업에 대해 생산 대수의 타당성, 국내 기술 수준, 사업의 경제성, 사업수행 체계의 적정성 등을 검토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은 매우 타당하고 합리적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산 헬리콥터 개발을 저지하려는 세력은 2010년 초면 노후 헬리콥터의 교체시기가 된다는 절박한 우리 사정을 알고 있기에 사업 착수 시기만 늦추면 되는 상황이다. 이미 전문기관에서 여러 차례 검토한 사항이라도 의혹만 제기하면 신중한 결정을 위해 설왕설래하는 사이 결국 개발 기간을 확보하지 못해 직도입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라도 직도입이 시작되면 개발 헬리콥터의 생산 대수가 줄어들어 경제성이 떨어지니 그대로 계속 도입하게 된다. 결국 KT-1, T-50 개발 등으로 자체 항공기술을 쌓았지만 한국은 앞으로 30년간 항공산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된다. 그들은 손도 안 대고 코 푸는 형국이다.

직도입하면 그 비용뿐 아니라 그후의 유지보수 비용도 모두 해외로 빠져나간다. 고급 연구.개발 일자리가 모두 해외로 나가는 건 물론 새로운 항공기 개발 기회도 없어져 향후 국가 안보의 중요한 축을 담당할 항공산업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다는 게 더욱 안타까운 점이다. 이렇게 허무하게 포기할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과거의 항공기 도입 때 기술 습득이라는 명분으로 20%나 더 비싸게 지불했단 말인가.

정부는 한국형 헬리콥터 사업을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유보의 뜻과 함께 양산 시기가 다소 늦어지더라도 전력 공백을 메울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하고 반드시 국산으로 개발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도 함께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한국의 항공산업 죽이기 공작도 빛을 잃게 될 것이다.

박춘배 인하대 교수·항공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