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지않는 표심…총선 정치권만 가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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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울 강남의 한 지구당위원장은 주민들이 많이 모여 있는 헬스클럽.에어로빅 강당 등에 들어설 때면 손에 진땀이 난다. 당원 3명과 90도로 인사를 해보지만 유권자들이 냉소적인 표정으로 대꾸도 안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총선이 20여일 앞으로 다가왔지만 정치권의 과열 양상과 달리 일반 유권자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일부 지방의 지구당 창당.개편대회에서 당원과 함께 유권자들이 몰려드는 '밥 선거' 과열 현상이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대도시의 상당수 유권자들은 총선에 무관심하기 짝이 없다.

취재팀은 지난 18일 낮 서울 강남.신촌 일대를 지나는 유권자 1백명에게 무작위로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자신의 선거구를 아는 사람은 9명, 각 정당의 출마예상자 이름을 아는 사람은 단 1명에 불과했다.

◇ 유권자 무관심〓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은 지난달 29일부터 지역감정 청산 등을 위한 1천만명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호응 부족으로 지난 17일 현재 전국적으로 4만명을 모으는데 그쳤다.

공선협 도희윤(都希侖)사무차장은 "지역감정 조장 등 구태가 반복되면서 시민들의 열기도 뚝 떨어져 자원봉사자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 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론조사기관인 미디어리서치 이지현(李知玹)씨는 "보통 여론조사에서는 5통화에 한번 응답거부가 나오지만 최근 선거관련 조사에선 2명 중 1명꼴로 전화를 끊는다" 며 썰렁한 민심을 전했다.

T여행사 직원 河모(31)씨는 "선거일인 다음달 13일에 여행을 가려는 문의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 며 "웬만한 관광지의 예약이 절반까지 차는 등 주말 수준의 예약률을 보이고 있다" 고 귀띔했다.

◇ 후보자에 대한 냉담〓정치인 인터넷 홈페이지는 19일 현재 2백70여개에 달하지만 일부 정치인을 제외하고 대부분 방문객 수가 1천건에도 못 미치고 있다. 서울 L의원이 만든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흑색선전의 달인' '××× 인간' 등 갖은 험담만 띄엄띄엄 올라오고 있다.

가톨릭 신자인 민주당 A후보는 최근 관내 성당에 인사하러 갔다가 문전박대당했다. 지난 8일 서울대교구로부터 '엄정한 정치 중립' 을 요구하는 지침이 내려왔다는 것이다. 7개 종단지도자들은 지난 15일 특정종교 후보에게만 표를 던지는 '종교 감정' 철폐에 합의했다.

후보자들은 "동창회.향우회에 참석해 지지를 호소해도 별 반응이 없는 실정" 이라며 "시민단체들의 정치 참여운동이 뜨겁지만 바닥 민심은 지난 총선 때보다 더 식어 있다" 고 거품 현상임을 지적하고 있다.

◇ 원인〓서울대 정치학과 박찬욱(朴贊郁)교수는 "새 정치를 갈망하는 시민들에 비해 기성 정치인들의 구태가 반복되자 불신감이 커진 게 무관심의 주원인" 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유권자들의 '한표 행사' 는 민주주의 체제의 근본이기 때문에 후보들이 다소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꼭 투표해야 한국 정치에 그나마 미래가 있다" 고 강조한다.

사회부 총선팀〓이상복.박현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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