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코뿔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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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최대 3.6t의 몸무게를 자랑하는 코뿔소는 한 방향 진행형이다. 시속 50㎞의 빠른 속도로 목표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에서 우직한 이미지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코뿔소의 최대 약점은 시력이다. 다소 떨어진 거리에 있는 물체를 제대로 식별하지 못한다. 물론 빼어난 후각과 청각이 그 약점을 보충하지만.

코뿔소는 종종 엉뚱한 상대를 향해 돌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저 멀리 떨어진 곳의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자신을 위협하는 적이 나타난 것으로 오인하는 경우다. 육중한 몸에 속도를 붙여 쫓아가 보지만 아무것도 없는 허탕이다. 다 눈이 나쁘기 때문에 생기는 헛수고다.

코뿔소의 시력이 좋지 못한 이유는 뭘까. 기린과 코끼리, 하마를 제외하면 가장 큰 동물이라는 점에서 달리 시력을 발달시킬 만한 동기가 없었다는 설명도 있다. 생존을 위협받지 않았다는 게 그 이유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코뿔소의 코 위에 우뚝 서 있는 원통형의 뿔이 그 시력의 발달을 가로막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든다.

눈앞을 막고 서 있는 작지 않은 뿔은 먼 곳을 내다보는 데에는 틀림없는 장애물이다. 섬유소가 각질화해서 생긴 뿔은 소뿔처럼 가운데가 비어 있는 동각(洞角)이 아니라 꽉 차 있는 중실각(中實角)이다. 이 뿔은 코뿔소의 생명이 붙어 있는 한 계속 자란다. 머리 양쪽에 붙어 있는 눈의 시선은 코뿔에 가릴 게 뻔하다.

뿔에 가려 먼 곳을 보는 데 지장을 받는 코뿔소의 눈은 그래도 장점 하나는 있다. 뒤쪽을 바라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곳만 관찰하고 가끔씩 뒤쪽으로도 눈길질을 한다는 점에서 코뿔소는 분명 특이한 동물이다.

중국인들은 이 코뿔소가 무언가를 바라볼 때에는 분명히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코뿔소가 달을 바라보다(犀牛望月)’라는 성어는 사물과 현상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을 지적할 때 쓰인다. 일의 앞과 뒤, 겉과 속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도 코뿔소의 이미지를 얻어 조롱의 대상이 된다.

지독한 근시안에 뒤쪽을 살피면서 한 방향으로만 내닫는 돌격성. 각종 현안에 대립각만 세우는 한국 정치권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진다. 청와대나 국회 모두 국민들의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통령이 국민과의 대화를 한 뒤에는 좀 나아질까. 동물에 비유되는 수치스러움은 벗을 수 있을까.

유광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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