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 프랑스인들 “월드컵 본선 자격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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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축구 대표팀 스트라이커 티에리 앙리(32·FC 바르셀로나)의 ‘핸드볼 파문’이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프랑스와 아일랜드의 외교 문제로 비화될 조짐까지 보인다. 앙리의 핸드볼 어시스트 때문에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오르지 못한 아일랜드 국민은 앙리의 유니폼을 불태우고, 그가 모델로 나선 제품의 불매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브라이언 카우언 아일랜드 총리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직접 재경기를 요구했다. 하지만 사르코지 대통령은 “아일랜드 국민에게 유감을 표한다. 하지만 심판의 영역에 속하는 일을 내게 묻지 말아 달라”며 완곡하게 재경기 제안을 거절했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홈페이지를 통해 “결정은 이미 심판이 내렸고 경기 결과는 바뀔 수 없다. 다시 경기를 치를 수도 없다”고 발표했다. 프랑스축구협회 역시 “FIFA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재경기 개최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당사자인 앙리 본인은 거듭 사과하며 “가장 공정한 해결책은 프랑스와 아일랜드가 재경기를 치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국민도 이번 핸드볼 반칙에 대해 “부끄럽다”는 반응 일색이다. 공영방송인 ‘프랑스2’가 23일(한국시간) 여론조사기관 ‘오피니언 웨이’의 설문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응답자 1003명 중 88%가 앙리의 행동을 “옳지 않았다(was wrong)”고 답했다. 응답자의 81%는 프랑스의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에 대해 “분수에 벗어나는 것(undeserved)”이라고 했다.

프랑스체육교사협의회는 “반칙해서 월드컵에 나가는 것을 보며 아이들이 뭘 배우겠느냐”며 “본선 티켓을 자진 반납하자”고 주장했다.

극소수지만 앙리를 옹호하는 쪽도 있다. 레몽 도메네크 프랑스 대표팀 감독은 “축구에서는 핸드볼 파울이 자주 나온다. 앙리는 고의성이 없었다”고 말했고, 2006 독일월드컵 결승전 때 박치기 사건을 일으켰던 프랑스 축구스타 지네딘 지단도 “앙리는 큰 실수를 했지만 사기꾼은 아니다”고 두둔했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과연 재경기가 열릴 것인가다. 존 델레이니 아일랜드 축구협회장은 FIFA가 2005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재경기를 허용한 사례가 있다며 거듭 재경기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내막을 알아보면 재경기가 열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

2005년 9월 4일 우즈베키스탄과 바레인의 독일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플레이오프 1차전 재경기를 허락했지만 당시 FIFA가 재경기를 승인한 이유는 승리한 팀이 요청했기 때문이다. FIFA가 패한 팀의 재경기 요청을 들어준 사례는 없다. 만약 이번에 아일랜드의 손을 들어줄 경우 앞으로 패한 팀들이 너도나도 재경기를 요구할 수 있다. 따라서 FIFA는 ‘절대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어쨌든 FIFA는 상당 기간 국제 여론의 따가운 눈총에 시달릴 것으로 보인다.

정영재 기자,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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