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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앵벌이'식 지역감정 부추기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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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진작부터 걱정해오던 것이 현실로 나타났다. 영남지역 낙천자를 중심으로 한 민주국민당이 본색을 드러내 노골적으로 영남정권 창출론을 들고 나왔고 다른 당들도 이에 질세라 지역정서를 들쑤셔대고 있다.

이번 선거가 또 지역대결 구도로 짜일 것임을 예상하지 못한 바는 아니다. 그러나 민국당 인사들의 무책임하고 후안무치(厚顔無恥)한 발언들은 그나마 정치인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절제도 보이지 않고 있다.

민국당의 김윤환(金潤煥)최고위원은 대구에서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가 합쳐 영남정권을 창출해야 한다" 고 했고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광일(金光一)후보는 부산에서 "신당(민국당)이 실패하면 영도다리에서 빠져 죽어야 되는 것 아니냐" 고 극단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특히 金후보는 "내 연설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축사가 담겨 있는 것" 이라고 주장해 YS의 지원을 은근히 시사했다.

이들이 이렇듯 극단적인 말들을 내뱉는 것은 나라야 몇쪽이 나든 당선만 되면 그만이라는 파렴치하고 몰상식한 정치수준을 그대로 드러낸 셈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면 金전대통령도 이젠 뭔가 입장을 정리할 때가 됐다고 본다.

지역감정 발언에는 상대방을 자극해 감정적인 대응을 불러일으키거나 박해를 당함으로써 오히려 동정심을 유발하자는 일종의 '앵벌이' 식 선거전략이 감춰져 있다. 따라서 검찰이 지역감정 발언을 흑색선전이라고 규정해 적극적으로 단속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것은 그 자체로서도 상식 밖의 발상이거니와 자칫하면 바로 이들의 전략에 놀아나는 꼴이 될 뿐이다.

정치적이고 편향적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검찰이 이들을 사법처리하면 그들은 마치 영남지역 정서의 피해자인 양 행세하게 함으로써 그들의 지역감정 전략에 기름을 끼얹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선관위 역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지역감정 자극을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낼 수 있는 게 고작이다.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단히 신중한 대응방안들이 강구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먼저 고려돼야 할 것은 이들의 시대착오적인 주장이 더이상 언론을 통해 보도되지 않도록 지역감정적 발언을 아예 묵살하고 그런 후보들이나 정당은 보도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들이 진지하게 검토돼야 한다. 총선시민연대는 지역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을 한 후보와 정당을 낙선운동의 집중적인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지역감정에 대한 최종 심판자는 결국 유권자들일 수밖에 없다. 특히 지역색(地域色)이 옅은 젊은층들이 적극적으로 나서 지역감정을 들쑤시는 낡고 썩은 정치인들을 단죄하는 중심역할을 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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