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유학 열풍] 上. 왜 보내려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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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서울 성산중 3학년 朴덕수(15)군은 내년 9월 미국 고교 진학을 목표로 하고 있다.

朴군이 유학을 결심한 것은 개인사업을 하는 아버지의 권유 때문. 부모는 중간 정도인 학교 성적으로는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기 힘들다고 설득했다.

朴군은 처음엔 망설였으나 "영어만 건져도 성공" 이라는 생각에 지금은 적극적으로 유학을 준비 중이다.

사설 유학원을 찾아다니며 각종 정보도 수집하고 있다. 朴군은 "영어만 잘 해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길이 많아지고, 사회에서도 쓸모가 있다" 고 말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둔 학부모 조모(43.의사)씨도 9월 유학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갈수록 심화하는 국제 경쟁 속에서 살아 남으려면 조금이라도 일찍 선진 교육을 받도록 하겠다" 고 말했다.

유학의 양상이 달라졌다. 최근 일고 있는 조기 유학 바람은 과거 일부 부유층의 도피성 유학과 달리 국제화와 대학 진학이라는 현실적 욕구가 배경이다.

영어의 원어(原語)수업이 강조되는 등 영어 열풍 속에 "한살이라도 어릴 때 보내는 편이 좋다더라" 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너도 나도 조기 유학 대열에 동참하는 것이다. 또한 국내에서 안되면 외국 대학이라도 보내자는 '학력보장' 심리가 깔려 있다.

이밖에 본질적인 교육문제와 사교육비 부담도 조기 유학의 주요 원인이다.

서울 청담동의 주부 金모(43)씨는 "중2인 아들이 과학.수학은 뛰어난 반면 예체능 과목이 부진해 성적이 잘 안나온다" 고 했다.

과학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자신의 아들을 한국의 교육 풍토에선 더 이상 키워줄 수 없고, 대학 진학에도 불리하다는 판단에서 조기 유학을 결정했다고 했다.

주부 崔모(45.경기도 고양시)씨는 "외아들(중3)이 학교 수업을 힘들어 한다.학교생활이 즐겁지 않으니 성격도 이상해지는 것 같다.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시작하도록 도와줄 생각" 이라고 했다. 崔씨는 "유학 비용이 만만치 않겠지만 어차피 영어과외를 시키려면 그 정도의 비용은 든다" 며 "아이의 장래를 위해 고액 영어과외를 시키는 셈치겠다" 고 말했다.

고1 자녀를 둔 朴성희(42)주부는 "아직도 학연.지연을 따지는 우리나라 풍토에서 유학생이 불리하다는 생각으로 망설였지만 최근 외국 대학 출신들이 국내 유수의 기업.로펌 등에서 맹활약하는 것을 보고 생각을 바꿨다" 고 말했다.

朴씨는 "아이가 잘 적응해 중1 때 유학가 하버드대에 진학한 '홍정욱의 7막7장' 처럼 되는 것이 소망" 이라고 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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