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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앞두고 살펴본 한-일 정치만화 두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4월 총선을 앞두고 온통 정치 얘기다.

하지만 정작 유권자들은 정치권이 어떻게 운용되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입후보나 선거 과정은 어떻게 치뤄지며 이후 의정 활동은 실제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각종 매스컴을 통해 정치권에 대한 뉴스를 얻는 것은 손쉬운 일이다. 하지만 정계의 내면을 속속들이 보여주는 채널은 거의 없다. 영화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나 TV드라마 '제3공화국' '3김시대' 등에서 나름대로 정치권의 이면을 그리려 시도를 했으나 단선적인 접근에 그치거나 우여곡절 끝에 조기종영돼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그럼 만화를 통해 정치권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떨까. 연작 만화일 경우 영화나 TV미니시리즈보다 호흡이 길다는 장점이 있어 서사 구조를 담기에는 안성마춤이라는 지적이다.

정치권을 다룬 국내 만화는 아직 김상택.박재동 등으로 대변되는 한 컷짜리 시사만화에 의존한다. 그만큼 서사구조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품이 드물다는 이야기다. 기껏해야 1980년대?유행하던 박봉성류의 기업만화에서 정경유착을 표현하기 위해 정치권 인물을 삽입한 정도에 불과하다.

만화평론가 박인하씨는 "정치권을 다룬 다양한 만화가 등장하기에 국내 성인만화 시장이 협소한데다 작가들도 명확한 자신의 정견을 가지고 있어야 정치만화 작업이 가능하다" 고 설명한다.

한국과 일본의 가장 대표적인 정치만화 두편을 통해 정치권을 들여다보자.

◇ '닭목을 비틀면 새벽이 안온다' 〓그나마 정치만화라고 부를 수 있는 국내 작품은 허영만의 '닭목을 비틀면…' (95년작.세주문화사)이다.

시사프로그램 진행자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초선 의원으로 활동하며 현실정치를 겪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실상에 얼마가 깊이 들어가는가가 정치만화의 매력임을 감안하면 아쉬운 점이 많은 작품이다. 정치권을 소재로 정면 공격을 시도하기보다 부수적인 갈등요소들을 곁들여 측면 공격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허씨는 "정치 만화는 이면을 주로 다뤄야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취재가 어려운데다 자기 검열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힘든 작업" 이라고 털어놓는다. 또 이승만 정권과 5.16을 소재로 한 작품도 추진하다가 모델이 되는 관련 인물들이 생존해있어 포기한 적이 있다고 덧붙인다.

◇ '정치9단'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정치권을 다룬 일본만화 '정치9단' (삼양출판사)은 국내 만화계에 '교과서' 가 될 만한 작품이다.

사회성이 강한 만화를 주로 발표해 왔으며 국내에는 '시마과장' 등의 작품으로 알려진 히로가네 겐시작이다.

비록 일본이 배경이지만 정치풍토가 비슷한 국내 정치권의 이면을 이해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될 작품이다. 실제 출판사측은 며칠전 '정치9단' 총 20권 중 국내 출간된 6권을 각 정당으로 부치기도 했다. 국내 정치인들에게도 소중한 참고 도서가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정치를 바라보는 작가의 분명한 관점. 히로가네는 1권의 서문에서 개혁을 지향하는 정치신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문명국이라 불리는 나라 중에 일본만큼 정치 이미지가 나쁜 나라도 없다. 온갖 요괴들의 복마전같은 국회의사당 위에는 먹구름이 몰려와 있다. 이를 걷어내는 정치인이 등장하길 기원하며 이에 한발 앞서 주인공 카지 류우스케를 먼저 국회로 보낸다." 히로가네는 작품 연재를 위해 50명이 넘는 국회의원과 도지사를 만나 취재를 했다고 한다.

때문에 일본의 정치 시스템은 물론이고 금권 선거와 부패, 일본 정계의 고질병으로 거론되는 당내 파벌의 문제점까지 상당히 심층적이고 사실적으로 짚어가고 있다.

게다가 주인공이 정치 개혁의 수순을 밟아가는 과정도 뜬구름 잡는 식의 이상주의적 접근이 아니다.

"선거란 제아무리 민주주의 시대라 해도 아직은 정이 통하는 법이야" 등의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철저히 현실적 여건을 전제로 이야기가 진행돼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정치9단' 을 출판한 일본 고단샤(講談社)편집부 관계자는 "91년 4월부터 8년간 연재된 이 작품을 통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독자도 상당수" 라며 "현재 일부 국회의원들이 주축이 돼 TV드라마 제작도 추진 중" 이라고 설명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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