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일 하고 있다”는 한마디에 미국 사회 반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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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호 28면

“냉정하게 사실을 직시할 줄 아는 인물이다.”
미국 투자은행 골드먼삭스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인 로이드 블랭크페인(55·사진)에 대한 평가다. 그를 세계 최대 투자은행 수장으로 끌어준 헨리 폴슨(64·전 재무장관) 전 CEO가 한 말이다. 이런 그가 순간적으로 냉정함을 잃은 것일까. 아니면 너무 냉정하다 못해 대중의 마음을 감안하지 못한 것일까. 그의 세 치 혀가 화를 불렀다. 이달 8일 영국 선데이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나는 신의 일(God’s work)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거액 보너스 비판에 대한 그의 응수였다.

골드먼삭스 블랭크페인 회장 ‘차액 보너스 당연’ 발언 일파만파

순간 미국인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골드먼삭스의 워싱턴 사무실 앞으로 시위대가 몰려들었다. 그들은 ‘블랭크페인 현상수배’라는 팻말을 들고 골드먼삭스의 탐욕을 비판했다. 누적된 불만이 표출된 것이다. 블랭크페인의 발언에 앞서 골드먼삭스는 미국인의 심기를 상당히 자극했다. 올해 임직원 보너스로 200억 달러(24조원)를 쌓아놓았다고 발표했다. 평범한 미국인들은 월가가 일으킨 금융위기 때문에 2조 달러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부담해야 하고 실업의 고통에 힘겨워하고 있는 마당에 자랑스레 발표된 거액 보너스는 대중의 화를 돋우기 딱 알맞은 소재였다.

게다가 골드먼삭스 임원들도 대중의 분노를 자극하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대표적인 인물이 부회장인 브라이언 그리피스다. 그는 지난달 20일 영국 런던의 세인트폴 성당에서 금융위기 원인으로 꼽히는 탐욕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예수님이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말했는데, 이는 이기심을 인정하고 한 말”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리피스의 말은 1980년대 대부조합(S&L) 사태를 일으킨 이반 부스키의 “탐욕은 좋은 것”이라는 발언과 함께 엄청난 세금을 투입해야 했던 당시 고통을 떠올리게 했다.

메인스트리트를 적으로 돌려
기억은 해묵은 미국 사회 갈등을 되살려 냈다. 이른바 ‘월스트리트(금융계) 대 메인스트리트(일반사회)’의 갈등이다. 돈의 권력에 대한 대중의 반감이다. 이런 반감은 대형 금융위기가 터지면 표면화해 정치적 변화까지 일으켰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도 이런 맥락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미 경제정책연구소(CEPR)의 공동소장 딘 베이커는 “80년 이후 월스트리트가 자유방임을 만끽하면서 거침없이 탐욕을 추구하다 이번 위기가 발생했다”며 “경기침체, 실업, 공적자금 투입 등 모든 부담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메인스트리트가 오바마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오바마는 당선 직후 ‘책임’을 강조했다. 월가의 탐욕에 대한 질타였다. ‘규칙’과 ‘건전성’, ‘절제’를 강조하며 금융을 규제하려고 했다. 패닉 와중이었기 때문에 월가는 드러내놓고 반발하지 못했다. 제임스 다이먼 JP모건 회장이 “성장이 억제된다”며 가끔 볼멘소리를 했을 뿐이었다. 베이커 소장은 “그런데 위기가 진정되고 경제가 회복하는 듯하자 월스트리트가 다시 목소리를 키웠다”며 “오바마의 금융개혁에 저항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메인스트리트는 다시 목소리를 키우는 월스트리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바로 이런 때 “블랭크페인의 발언이 불거졌다”며 “이후 우리 귀에 익숙한 저주의 말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고 조엘 프레이큰이 말했다. 그는 미 거시경제분석전문 이코노믹어드바이저리그룹의 회장이다. 저주의 말은 ‘악덕 자본가(Robber Barons)’ ‘경제 반달족(Economic Vandals)’ ‘탐욕스러운 자본가들(Vulture Capitalists)’ 등이다.
특히 골드먼삭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부실을 글로벌 위기로 증폭시킨 부채담보부증권(CDO)만큼이나 해로운 존재로 비쳐지고 있다. 위기의 와중에 골드먼삭스 트레이더들의 행위가 하나씩 공개되면서 골드먼삭스의 이미지는 더욱 나빠지고 있다. 그들은 모기지 관련 자산이 하락한 2007~2008년 이들 자산을 공매도해 시장의 붕괴를 부채질했다. 게다가 트레이딩룸에서 “홀딱 벗겨먹어버려!”라고 말하며 낄낄댄 사실이 내부자의 증언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조엘 프레이큰은 “80년 이후 일반 미국인들이 연기금과 뮤추얼펀드 등으로 주식시장에 많이 참여하면서 월스트리트와 메인스트리트의 갈등이 잠복상태에 들어갔다”며 “하지만 요즘 유령이 다시 깨어나듯 갈등이 표면화하고 있다”고 평했다.

월스트리트와 메인스트리트 갈등이 불거질 때마다 금융규제가 강화되는 일이 반복돼왔다. 1907년과 1929년 공황 이후 미 의회는 대중의 분노를 달래기 위해 월가를 겨냥한 각종 법규를 제정했다. 현재 미 의회에도 금융시장 개혁법안들이 제출돼 있다. 그동안 월가의 로비 때문에 통과되지 않았다. 하지만 블랭크페인의 설화 때문에 오바마 등 금융개혁을 주장하는 쪽의 목소리가 커질 듯하다. 자신들을 변호하려던 블랭크페인의 말이 비수가 돼 되돌아오고 있는 셈이다.

‘뒷문 출신’에서 월가의 아이콘으로
블랭크페인이 ‘신의 일’과 같은 말을 서슴지 않고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골드먼삭스에 대한 오만에 가까운 자부심이 똬리를 틀고 있다. “가난한 우체국 직원의 아들로 태어난 내가 CEO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준 골드먼삭스는 너무나 완벽한 시스템”이라고 그는 말하곤 했다. 그러나 그는 골드먼삭스 내부에서 서자 취급을 받았다. 78년 하버드 로스쿨을 졸업한 뒤 골드먼삭스에 지원했지만 불합격했다. 월가 입성을 노렸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대신 그는 금과 원유 등을 트레이딩하는 J 아론에 들어갔다. 81년 골드먼삭스가 상품 트레이딩을 강화하기 위해 J 아론을 인수하는 바람에 블랭크페인은 덩달아 골드먼삭스의 일원이 됐다.

그는 합병이라는 뒷문을 통해 골드먼삭스에 입성해 최고운영책임자(COO)까지 오르기는 했지만 CEO가 될 혈통은 아니었다. 헨리 폴슨의 대를 이를 인물로는 존 테인 전 메릴린치 회장과 존 손턴 중국 칭화대 교수 등이 꼽혔다. 두 사람은 99년 사내 쿠데타로 당시 대표인 존 코자인(현 뉴저지 주지사)을 몰아내고 폴슨을 옹립한 공신이기도 했다.

규제 강화 우려 인재 이탈 속출
블랭크페인은 입지가 단단한 테인이나 손턴과 직접 경쟁하기보다는 폴슨에 충성을 다했다. 그런데 2003년 테인과 손턴이 차례로 골드먼삭스를 떠났다. 테인은 뉴욕증권거래소 회장이, 손턴은 칭화대 교수가 돼 나갔다. 기대하지 않은 행운이었다. 이후 2006년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재무장관이 된 폴슨이 충성스러운 블랭크페인을 후계자로 지명했다.

선데이 타임스는 “블랭크페인이 월스트리트의 태양왕으로 불릴 만하다”고 평가했다. 그의 능력이 그런지는 논란의 대상이지만 골드먼삭스의 위상을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골드먼삭스의 자산은 1조 달러(1200조원·올 6월 말 현재) 정도다. 80년 이후 세계 최대 투자은행이 되면서 세계 각국의 실력자나 그들의 아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막강한 정보 네트워크를 구성했다.

블랭크페인은 자신의 말이 사회적 갈등으로 비화되자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5억 달러를 미 중소기업에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주요 주주이면서 미국 자본주의 상징인 워런 버핏까지 내세워 이벤트 형식으로 5억 달러 지원안을 발표했다. 또 골드먼삭스가 버블시대와 위기 와중에 한 일을 사과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뜻과는 달리 미국 여론은 좋아지지 않았다. 중소기업 지원액이 보너스 200억 달러의 2.5%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게다가 미국 법에 따라 금융회사들은 가난한 사람이나 중소기업에 자산의 0.8~1%를 지원해야 하는데 블랭크페인이 특별히 내놓는 것처럼 생색냈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분노의 목소리는 되레 커지고 있다.

블랭크페인의 시련은 이것만이 아니다. 인재들이 줄줄이 이탈하고 있다. 유능한 트레이더들이 스스로 헤지펀드 운용회사를 차려 떠나고 있는 것이다. 보너스 규제가 강화되면 골드먼삭스에서 기대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투자은행의 알파와 오메가인 인재를 잃고 블랭크페인 체제가 순항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미국의 유명한 금융 애널리스트인 메러더스 휘트니 휘트니투자자문 대표는 이달 19일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인재 이탈로 골드먼삭스 실적 전망이 밝지 않아 투자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낮췄다”고 밝혔다.

투자은행에서는 CEO가 허점을 보이면 궁정 쿠데타가 곧잘 일어난다. 30년대 후반 JP모건이나 90년대 초 리먼브러더스, 99년 골드먼삭스의 리더가 쿠데타 방식으로 교체됐다. 사내 입지가 단단하지 않은 블랭크페인이 이번 사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면 쫓겨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블랭크페인은
1954년 뉴욕 브롱스의 가난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우체국 직원이었다. 블랭크페인은 뉴욕 공립학교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에 들어갔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인 벤 버냉키(56)와 입학동기이면서 같은 기숙사의 친구다. 블랭크페인은 75년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했다. 그는 버락 오바마보다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 그는 스스로 “나는 여전히 블루칼라”라고 말했다. 그의 발언이 문제가 되자 이 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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