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은행, 日부실채권 매입 러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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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도쿄=남윤호 특파원]미국계 투자은행들이 일본에서 부실채권 정리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부실채권을 헐값에 사들인 뒤 이에 딸린 담보 부동산을 개발하거나 개.보수해 비싼 값에 되파는 사업이 의외로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투자기관인 론스타 펀드는 최근 제2금융권의 니치보신(日貿信)으로부터 일본에서 단일 건수로는 최대금액인 장부가격 4천3백억엔어치의 부실채권을 매입했다.

론스타 펀드는 1998~99년에도 일본의 기업.금융기관으로부터 2조엔 이상의 부실채권을 사들여 현재 매입총액만 3조엔(장부가 기준)에 이른다.

미국의 골드먼 삭스와 세이버러스 캐피털도 지금까지 일본의 부실채권을 2조엔어치 정도 매입했다. JP모건과 메릴린치도 일본의 경기회복세에 맞춰 부실채권 정리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이들은 부실채권을 장부가의 10분의1 이하로 사들여 담보부동산 가운데 빌딩은 처분 혹은 임대해주고 짓다만 건물.공장은 돈을 더 들여 개발한 뒤 웃돈을 얹어 매각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경영이 어려워져 대출이자를 갚지 못하는 기업과 채권은행 사이에서 중재교섭을 벌여 채권액수를 낮추고 이를 일시금으로 은행에 대납한 뒤 나중에 기업이 정상화되면 원리금을 상환받는 채권압축 비즈니스도 서서히 확대되는 추세다.

지금까지 일본의 금융기관.기업들은 부실채권이 발생하면 책임문제를 의식, 손실이 확정돼 장부에서 털어낼 때까지 처리를 질질 끌어 수익성 악화의 원인으로 지적돼왔다.

일본의 금융감독청 및 대장성은 이에 따라 지난해부터 자금력과 노하우를 지닌 해외 투자기관들이 일본의 부실채권을 사들여 처분할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완화해왔다.

일본 금융감독청에 따르면 92년 이후 대형은행 17곳이 처리한 부실채권액은 모두 51조엔이다.

이 가운데 상당부분이 장부상으로만 털어낸 것이어서 해외 투자기관들에게 넘어갈만한 매물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국의 회계법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 앤드 쿠퍼스는 일본의 은행권만 따지더라도 부실채권 정리사업의 시장규모가 10조엔대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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