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선거법 '선거보도 형사처벌' 파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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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개정 선거법의 선거기사 심의 규정에 제동이 걸렸다.

이 법의 시행 당사자인 언론중재위 산하 선거기사심의위가 직접 이의를 제기했다.

선거기사심의위 위원들은 28일 회의에서 "1991년 헌법재판소가 사과문 게재 요구 관련 민법조항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것과 배치된다" 고 반박했다.

당시 헌재는 "사죄광고를 강제로 요구하는 것은 국가가 재판이라는 권력작용을 통해 자기의 신념에 반해 윤리적 판단을 하는 등 헌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양심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다" 고 판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위원회 부위원장인 단국대 윤석홍(尹錫弘.언론홍보영상학)교수는 "심의위 명령에 불응할 경우 곧장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한 것은 심의위에 심의.중재가 아닌 사법적 판단기능까지 부여한 것으로 언론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많다" 며 "불공정 보도에 대한 별도의 사법적 판단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심의위 결정에 불복했다는 이유로 형사적 처벌 대상으로 삼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고 지적했다.

남시욱(南時旭.전 한국신문편집인협회장)선거기사심의위원도 "위헌성 여부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고 말했고, 김영호 언론개혁시민연대 신문개혁특위 위원장은 "언론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이런 독소조항이 어떻게 국회를 통과했는지 모르겠다" 고 밝혔다.

이 조항은 내용뿐 아니라 입법 절차에서도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 법안을 다룬 국회 정치개혁특위는 당초 '불공정 보도 언론인' 에 대한 '업무정지 1년' 이라는 처벌조항을 신설하려다 반발여론이 일자 이를 백지화했었다.

그러나 뒤늦게 슬그머니 이 조항을 집어 넣은 것이 확인됐다.

특위에 참여했던 한나라당 신영국(申榮國)간사는 "당시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는 위반시 규제조항이 있는 만큼 신문 에도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신설한 것" 이라'며 "선거관리위원회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여당측이 법안을 제출했다" '고 말했다.

민주당 이상수(李相洙)간사는 "심의 당시 91년 위헌 판결을 받은 사실을 몰랐다" 며 "그렇다면 91년 이후 방송법은 계속 위헌이라는 논리인데 법률적으로 더 따져봐야 할 문제" 라고 말했다.

그러나 심의위 위원들은 불공정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의 불명확성 등을 들어 이 조항의 현실적 적용에도 의문을 던지고 있다.

한 위원은 "이 조항은 후보자 등의 반론 청구가 있은 후 48시간 내에 불공정 여부를 통보토록 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는 시간적으로 부족하다" 고 지적했다.

언론중재위원회 관계자도 "선거법이 위헌 소지가 있는 만큼 시행과정에서 사과문 게재를 명령이 아닌 권유정도로 하는 것이 합리적" 이라고 말해 앞으로 이 조항의 운용을 둘러싼 잡음이 뒤따를 전망이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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