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2000] 음란사이트 접속막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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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미국의 홀랜드는 미시간주에 위치한 인구 3만명의 소도시다. 유럽의 '홀랜드' 처럼 튤립이 유명하다. 보수성향이 강한 이 곳은 한적하기 이를데 없는 도시다.

그런데 최근 전례없이 뜨거운 토론의 열기에 휩싸였다. 문제는 시립도서관의 컴퓨터에 인터넷 음란사이트를 차단하는 필터 프로그램을 설치하느냐의 여부를 둘러싼 것.

청소년들이 인터넷 음란 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이 알려지자 시립도서관측은 이를 막기 위해 필터 프로그램을 설치키로 결정했다.

도서관에 재정 지원을 하는 후원회가 음란 사이트 접속을 방지하는 필터를 설치하지 않으면 보조금 지급을 줄이겠다고 경고한 것이 그 배경이었다.

이 필터는 이미 미국에서만 1천여곳 이상의 시립도서관에 설치돼 있어 이 조치는 당연히 받아들여질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예상못한 반발이 일어났다. 헌법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를 막는 일이라는 원칙론부터, 필터를 설치할 경우 시스템의 속도가 떨어지고 정상적인 사이트 접근마저 중단되는 일이 많다는 현실론까지 가세하면서 '주민들의 '반대 시위마저 일어났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미국은 물론 전세계는 적지 않은 반향을 나타냈다. 각종 단체와 개인들이 모여들어 양측의 주장을 지원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결국 도서관측은 자신의 결정을 일단 철회하고 이 문제를 시민투표에 붙이기로 했다. 지난 2월 22일 시행된 시민투표 결과는 다소 뜻밖이었다. 고령층이 많고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도시였지만 4천3백79 대 3천6백26으로 설치 반대 결정이 났다.

필터 반대론자들은 인터넷의 본질을 이해한 자유 언론의 승리라고 평했다. 그러나 도서관 후원회측은 이번 투표결과에 승복하지 않았다.

청소년보호를 위해 '필터가 설치될 때까지 지속적인 캠페인을 펼치겠다고 공언했다. 그렇다면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돼야 바람직할까. 반대의견을 던진 62세의 한 홀랜드 시민이 그 답을 제시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필터가 아니라 관리자입니다. 어른들이 자리를 지키고 앉아 아이들에게 음란 사이트는 보지 말라고 말하면 됩니다. "

튤립 도시의 인터넷 음란사이트에 대한 해결책은 올바른 방향이었다고 생각한다.

곽동수 <컴퓨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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