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가 바꾸는 사회] 사이버공간…'새 공동체' 역할할까-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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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사이버공간이라는 용어는 우리를 현혹한다. 그 까닭은 우리가 무엇보다 공간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회의를 거듭해도 부정할 수 없는 점은 '생각하는 나' 이전에 '먹고 활동하는 나' 다. 이런 이유로 사이버 '공간' 이라는 용어는 새로운 물질적 공간이 등장한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것은 새로운 공간이 아닌 새로운 정보소통 매체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공간의 등장이 아니라 새로운 공간의 이용방식이다.

그렇다면 공동체나 공공영역의 복원 혹은 새로운 구성에 이 새로운 매체가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먼저 공동체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자. 이것은 흔히 '가상공동체' 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다뤄진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고안된 이 개념은 명백히 '산업사회에서 해체된 공동체를 정보사회에서 되살린다' 는 함의가 있다. 다시 말해 이 개념의 요체는 컴퓨터통신(CMC)이, 비록 산업사회와 정보화 사회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일차적 관계에서 연원하는 친밀성이 지배하는 공동체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컴퓨터통신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았던 1990년대 초의 시점에서 보자면 이런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그리고 지금도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식의 관계를 형성하고 즐기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중반을 고비로 사정은 사실 급변했다. 컴퓨터통신의 대중화는 곧바로 상업화로 이어졌으며, 그 결과 공동체는 국지적 현상으로 위축돼 버렸다.

미국 스탠퍼드대의 실증적 연구결과가 보여주듯 컴퓨터통신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오히려 고독감을 느끼고 있다.

'가상공동체' 는 이런 점에서 이제는 상당 부분 '위안의 담론' 구실을 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공공영역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다. 컴퓨터통신은 진정한 의미에서 대중매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대중의 매체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주목해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통신을 통해 그리스 시대에 시민들이 토론하던 장인 '아고라(Agora)' 가 복원되리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이런 관점에서 생각할 수 있는 사례들은 무수히 많다. 국내에서 대표적인 예의 하나가 '딴지일보' 로, 언론재벌이나 재벌언론이 여론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데 대해 호쾌한 '똥침' 을 날리기 위해서는 컴퓨터통신만한 것이 없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컴퓨터통신, 특히 인터넷을 통해 이뤄지는 정보적 만남은 익명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참된 여론을 환기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지만, 다른 한편 컴퓨터통신을 온통 배설성 담론으로 채우는 데 여념이 없기도 하다.

컴퓨터통신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이 네티즌이라는 우아한 주체는 아닌 것이다. 크래킹과 도배와 욕설이 난무하는 것이 컴퓨터통신의 실상이기도 하다.

모든 매체는, 아니 모든 기술은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그 중의 어떤 것을 실천적으로 강조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실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무턱대고 컴퓨터통신을 이용해야 한다고 외치기 전에 어떻게 이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의가 우선해야 할 것이다.

홍성태 <사회학 박사, 계간 '문화과학'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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