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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이 투자강연 해야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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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 7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09년 글로벌 경제 흐름과 한국 투자시장의 변화’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경기가 회복됐다가 다시 가라앉는 더블딥을 두고 논란이 많은데, 증시에는 내년 1분기까지 조정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그는 “조정은 약하게 이뤄질 것이고 경제와 증시는 올라가는 단계이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했다. 그는 “해운·조선업종은 당분간 침체가 지속될 것”이라며 “강한 업종의 잘나가는 기업 주식에 주목하라”고 말했다.

고 의원은 18대 국회에 입성하기 전 증시 전문가로 활약했다. 케이블TV 채널에서 주식투자 관련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자신의 투자 방법론을 정리해 『주식 실전 포인트』 『고 변호사의 주식강의』 등의 책을 냈다. 또 투자자문사를 설립해 운영했다.

‘고시 3관왕’ 변호사 타이틀과 이런 이력을 가진 그가 향후 시장을 어떻게 보는지는 상당수 투자자가 궁금해할 수밖에 없다. 그가 강연 시작 전 “국회의원으로서 주식 관련 강연을 하는 게 조심스럽다”면서도 한 시간 남짓 구체적인 조언을 들려준 것은 그런 투자자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이날 강의의 세부적인 내용은 국회의원의 본분에 비춰 볼 때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다. 그는 국회의원으로서 제도나 정책을 바꿈으로써 주식·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데도 이날 강연에서는 아직도 제도나 정책과 무관한 투자 가이드나 할 법한 조언을 내놓았다. 예를 들어 그는 “부동산 가격은 아직 꺾이지 않았고 위로 가는 방향이며 앞으로 20년은 그렇게 간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선 인구의 연령별 분포를 보면 1973년생이 가장 많다. 따라서 이들이 활동하는 동안에는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또 ‘나홀로 가구’가 점점 많아져 신규 주택 수요가 증가한다.”

국회의원이라면 이런 전망에 따라 주택 공급이 안정적으로 늘어나 집값이 큰 폭 오르지 않도록 하며 서민이 주택을 더 좋은 조건에 마련하도록 하는 정책이나 제도를 궁리하고 관련 기관과 협의해 시행해야 한다. 그가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한국주택금융공사 등 기관을 담당하는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활동 중이라 더욱 그렇다.

고 의원은 “지금까지는 기업 구조조정이 강하게 이뤄지지 않았지만 내년 상반기엔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코스닥 기업 여럿이 상장 폐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회의원으로서 그는 단순히 관측을 내놓을 게 아니라 기업 구조조정을 강도 높게 추진해야 하는지, 그렇게 한다면 언제 해야 하는지 견해를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고 의원은 자신의 강의를 들으러 온 400여 명의 투자자보다 더 많은 국민을 위한 의정 활동을 벌였으면 한다.

백우진 이코노미스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