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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금피아’ 해결, 금감원에 맡겨 될 일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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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엊그제 금융감독원이 이른바 ‘금피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방책을 내놓았다. 본지 보도에 따르면 은행과 보험·증권 등 금융회사의 감사 자리는 금융감독원 퇴직자들이 ‘싹쓸이’하고 있다. 민간은행 11곳 중 10곳, 증권사 44곳 중 30곳의 감사 자리를 금감원 퇴직자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금감원을 마피아에 비유하는 거센 비판 여론이 일자 부랴부랴 자체 개선책을 내놓은 것이다.

금융회사 감사는 공모를 통해 선임하도록 권고하겠다는 게 핵심 내용이다. 또 금융사에 취업한 금감원 퇴직자들이 현직 직원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걸 막기 위해 내부 통제와 감찰도 강화하겠다고 한다. 정년을 4년 앞둔 부서장을 일괄 보직 해임해 인력개발실로 배치해왔던 관행도 없앤다고 한다. 현행 공직자 윤리법은 퇴직일로부터 2년간, 퇴직 전 3년 이내에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관련 있는 사기업에 취업하는 걸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은 퇴직 예정자들을 3~4년 전에 인력개발실 등 금융과 관계없는 부서로 보내 ‘퇴직 전 3년’ 조항을 피해왔는데, 이번에 이런 관행을 없앤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정도로는 ‘금피아’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본다. 실효성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령 공모제라고 해도 금감원이 얼마든지 입김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금피아’가 문제되는 건 금융감독원이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감독하는 유일한 기구이기 때문이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도 금융 규제와 감시의 실패 때문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감독만 제대로 했더라면 위기는 피할 수 있었다는 게 중론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봄까지 한국경제 부도설이 파다했던 데는 은행 책임이 컸다. 예금보다 대출이 훨씬 많았고, 이를 위해 은행들은 지나치게 외화를 빌리고 은행채를 발행했다. 그런데도 금감원은 제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리된 데는 ‘금피아’ 탓도 있었다고 본다. 금감원 직원들이 예전 자신의 상사나 선배가 감사로 있는 금융회사를 제대로 감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건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또 자신들이 퇴직 후 갈 직장을 제대로 감독할 수 있을 리도 만무하다. 금융사들이 금감원 퇴직자를 선호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금감원은 전문성을 높이 사기 때문이라지만, 그렇지 않다는 건 금융회사 몇 군데만 물어봐도 안다. 자신들의 입장을 잘 전달할 수 있는 통로나 로비스트로서의 능력을 높이 사기 때문이라는 걸 말이다.

‘금피아’ 문제를 당사자인 금감원에만 맡겨 풀게 하는 건 무리다.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해 금감원이 아닌, 다른 정부 부처가 제대로 조사하고 개선방안을 내놓아야 한다. 공직자 윤리법도 강화돼야 한다. 퇴직 전 3년간을 5년간으로 늘리는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다고 하니, 차제에 적극 검토하길 바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금융회사의 금감원 퇴직자 수요를 줄이는 일이다. 그러려면 금감원의 재량권을 확 줄여야 한다. 규제완화나 감독체계 개편 등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제2의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