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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화가 바꾸는 사회] 3. '사이버 속의 나' -찬성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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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시간과 공간의 장벽이 허물어져 가는 오늘날 우리가 '진짜' 라고 여겨 왔던 것은 사라지고 '가짜' 라고 여기던 것이 현실화하고 있다.

바로 가상현실을 통해서다.

가상현실이 시간과 공간으로 제약된 실제의 현실을 급속히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를 철학적으로는 실재(實在)와 가상의 만남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철학사에서 실재와 가상, 양자(兩者)사이의 긴밀한 연관을 확인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가상은 결코 '가짜' 가 아니다.

따라서 양자의 결합이 원천적으로 부당하다는 비판론자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질 들뢰즈 같은 이는 오히려 "가상은 실재와 대립하지 않으며, 충분한 실재성을 독자적으로 가진다" 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가상은 잠재적인 것이 현실화하는 과정으로, 나무 씨앗이 마침내 현실화해 나무가 되는 과정쯤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런 의미에서 '가상의 실재성' 은 현실의 실재성만큼이나 의심할 수 없다.

가상현실은 가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없애 실재의 확장을 가져다준다.

실재의 확장은 당연히 인간 자아의 확장과 이어져 있다.

인간의 삶은, 하이데거 식으로 말한다면 끊임없이 자신이 아닌 어떤 것으로 나타내려 하는 과정이다.

그러하다면 가상현실이 자아의 해섯?가져온다거나 자아를 분열시켜 혼란에 빠뜨릴 것이라고 하는 염려는 지나치다.

여기에는 하나의 통념, 즉 자아는 고정되고 불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전제돼 있다.

그러나 하나의 중심에 얽매이지 않은 유동적이고 다면적인 자아의 개념이 항상 가능하다.

이를 분열로 보는 것은 자아 내부의 소통 구조를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히려 고정되고 불변하는 답답한 자아로 남길 거부하는 데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동질적인 하나의 자아란 있을 수 없다.

자아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갱신해 가고자 한다.

그러기에 자아는 항상 불안하다.

그렇지만 그 내부에는 다양성 속에서 갈등을 해소하고 파편을 통합해 가는 가능성을 항상 포함하고 있다.

가상현실의 세계는 현실세계 못지 않게 이러한 가능성을 그것도 효율적으로, 민주적으로, 그리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실현시켜 줄 수 있다.

여기에 자유와 개성은 필수적이다.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세계는 자유롭고 개성있는 삶의 추구에 새로운 가능성과 환경을 마련해 주고 있다 할 것이다.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통해 구성된 인공적인 환경으로서 가상현실의 등장은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이 완전한 존재가 아닌 한 누구든지 새로운 사태 앞에서 어느 정도 자기 정체성이나 도덕규범에 대한 위기감을 경험할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위기감은 동시에 실재와 인간의 한계를 확장하는 혁명 상황에서 겪는 불가피한, 혹은 자연스런 경험이다.

문제는 네트워크를 통한 사람들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의 형성이다.

이를 위해 필수적인 것은 개개인에게 자기 관리 능력을 키워주는 교육을 실행하고 새로운 세계에 걸맞은 새로운 규범을 창출하는 일이 될 것이다.

강성화 서울산업대 강사·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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