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달고 사는 그녀, 활짝 웃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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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강일구]

통신업계의 유무선 통합서비스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통신업체들은 휴대전화와 집전화 가입자 신청을 따로따로 받아 왔다. 하지만 통신 환경이 급변했다. 초고속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인터넷전화(VoIP)가 널리 보급되고 휴대전화를 통한 무선인터넷 접속이 간편해지면서 무선과 유선 통신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이에 부응해 통신업계도 통합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유선·무선 부문 간 합병에 적극 나섰다. 올해 시작된 통신업계의 ‘컨버전스(융합) 전쟁’의 결과는 내년 중에 승부의 윤곽이 판가름날 전망이다.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려는 통신업체들의 경쟁은 늦가을 찬바람 속에서도 열기를 더하고 있다.

◆융합 서비스=포문은 KT가 열었다. 이 회사는 지난달 중순 가정용 유무선 통합서비스(FMC) ‘쿡앤쇼’를 내놓았다. FMC의 개념은 간단하다. 무선인터넷이 잡히는 곳에서는 이동통신 대신 인터넷전화를 쓸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통해 데이터를 주고받는 방법은 두 가지다. 3세대(3G) 이동통신망인 ‘WCDMA’를 통하거나 무선인터넷(와이파이)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동통신망을 쓰면 우리나라 99% 지역에서 통화가 가능하고 이동하면서도 무리없이 쓸 수 있다. 다만 표준요금 기준으로 음성은 10초당 18원, 데이터는 킬로바이트(kB)당 5원 안팎으로 값이 비싸고 속도도 느리다. 무선인터넷은 반대다. 속도는 빠르고 값도 싸지만 접속지점(AP) 주변에서만 쓸 수 있다. AP에서 벗어나면 전화가 끊긴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적지 않은 기업에서는 이미 FMC를 쓴다. 휴대전화기를 회사 안에서는 유선전화처럼 쓴다. 외부에 나가면 보통 휴대전화와 똑같이 쓴다.

KT는 이 서비스를 개인용으로 확대한 것이다. 집에 유무선 분배기가 있다면 따로 인터넷 전화기를 마련할 필요 없이 휴대전화를 집전화처럼 쓰면 된다. 회사나 길거리에서도 AP가 있으면 유선전화로 쓸 수 있다. KT는 전국 1만3000개의 네스팟 AP도 개방할 방침이다. 네스팟은 이 회사의 무선인터넷 서비스 브랜드다. 이경수 KT 전무(컨버전스와이브로본부장)는 “무선 AP가 있는 집이나 직장·학교에서 통화를 많이 하는 가입자는 통화료를 30% 이상 아낄 수 있다”고 말했다.

LG텔레콤도 개인용 FMC를 준비 중이다. 올해 안에 스마트폰 2~3종을 내놓고 내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LG텔레콤은 가입자가 200만 명을 넘어 업계 선두를 지키고 있는 LG데이콤의 인터넷전화 ‘myLG070’이 큰 원군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myLG070용 유무선 분배기를 홈FMC 장비로 쓸 수 있어 이미 인터넷전화를 쓰는 고객들이 LG텔레콤까지 묶음상품으로 가입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동통신 시장의 시장점유율 50%인 절대강자 SK텔레콤은 FMS 서비스인 ‘T존’으로 맞불을 놨다. FMS는 일정 지역에서 쓰는 휴대전화는 인터넷전화 요금만 받겠다는 상품이다. 할인 받을 지역은 고객이 선택할 수 있다. 집·회사·학교 등 통화량이 가장 많은 곳을 지정하면 해당 기지국을 통해 쓰는 통화는 10초당 18원인 이동통신 요금 대신 10초당 13원(휴대전화에 걸 때) 또는 3분당 39원(유선전화에 걸 때)의 인터넷전화 요금만 받는다. 다만 월 2000원의 FMS 요금을 내야 한다.

상대적으로 유선과 초고속 인터넷 분야에서 강점을 지닌 KT와 LG텔레콤이 이를 기반으로 이동통신을 덧붙이는 전략을 취한 데 대해 무선으로 유선전화까지 통일하겠다고 대응한 것이다. 이순건 SK텔레콤 마케팅기획본부장은 “할인 지역은 FMC보다 좁지만 통화 품질에선 이동전화를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우수하다. 또 통화 중에 T존 밖으로 나가도 적용되는 요금만 달라질 뿐 전화가 끊어지지 않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합병으로 경쟁력 강화=통신업계가 유무선 통합서비스에 적극 나선 배경은 유선·무선 업체 간의 합병으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된 때문이다. KT는 6월 자회사인 KTF를 흡수합병했고, LG텔레콤·LG데이콤·LG파워콤 3사도 내년 1월을 목표로 합병 절차를 진행 중이다. FMC가 활성화하면 단기적으로는 유선 부문인 KT의 매출이 늘고 옛 KTF의 무선 부문은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 결합서비스 가입자 증가 등의 선순환 효과가 기대된다 해도 당장 KTF의 실적을 생각하면 KT가 도입을 강행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는 의미다. KT와 KTF의 합병이 이런 걸림돌을 제거한 셈이다. LG 통신 3사가 합병을 서두르는 것도 이런 사정을 감안했다.

이에 비해 SK 통신 계열사들은 합병보다 우선 개별 업체별로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정만원 SK텔레콤 사장은 3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통신 계열사 간 합병만으로는 개인고객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매출 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사장은 “시장의 리더로서 유통·물류·금융 등 전혀 다른 차원의 신성장동력을 찾겠다”고 덧붙였다.

김창우 기자
일러스트=강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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