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생각한다] 의사협회 장외집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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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대한의사협회는 정부의 의약분업안이 의사들의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며 장외투쟁에 나섰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노동계는 의료계가 환자를 볼모로 집회를 강행한 것은 집단이기주의를 위한 단체행동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찬성]

우리 의사들은 지난 20여년 동안 저수가 의료보험의 족쇄 속에서도 국민건강을 위해 국가 의료정책에 적극 협조해왔다. 그러나 적자 재정기반과 정책부재 속에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돼 온 의료보험제도는 중병 발생시 보험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가정경제를 뒤흔드는 제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그동안 물가인상 억제란 논리를 앞세워 의사들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해왔고 그결과 의사들은 적정 진료를 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됐다.

급기야 지난해 11월 15일 단행된 약가 인하조치로 상당수 병.의원이 경영악화로 도산하는 불행한 사태를 맞게됐다.

파산지경의 보험재정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정부가 의약계의 대혼란을 자초하고 국민의 불편을 강요하는 의약분업을 강행하려 하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에 의사들은 국민건강권을 지키고, 의사의 양심을 걸고 잘못된 정부의 의약분업 방안을 올바로 개선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투쟁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우리로서는 국민의 건강권과 의사의 진료권을 침해하는 잘못된 의약분업은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게 기본입장이다.

또한 국민건강을 침해하는 의약품 오남용이 이 땅에서 사라질 수 있도록 대체조제와 임의조제를 원천 봉쇄할 수 있는 법적 보완장치와 감시기구를 설치해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이와 함께 약화(藥禍)사고로 인한 국민의 건강권이 침해될 경우 책임소재를 명확히 가리고 적절한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대책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의약분업은 시범사업을 실시한 후 점진적으로 확대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의사들이 교과서에서 배운대로 적정 진료를 할 수 있도록, 수가체계와 의보제도를 전면 개편하는 것이 마땅하다.

대통령 공약사항인 지역의료보험 재정 50% 지원 약속을 즉시 이행하고 명목뿐인 계약제로 포장된 보건복지부의 시행령 안은 철회해야 한다.

우리 의사들은 국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우리의 최소한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모든 수단을 동원,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조상덕 <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

[반대]

의사단체는 공식적으론 의약분업의 시행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이들의 행보를 보면 실제로는 의약분업을 반대하고 있다.

의사단체는 ▶의약품 재분류▶약사의 임의조제 금지▶약사의 대체조제 금지 등의 주장을 내걸고 정부안에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안의 골격은 바로 의사협회가 약사회.시민단체와의 협의를 거쳐 확정한 1999년 5월 10일의 합의안에 기초를 둔 것이며, 국회에서 여야 합의하에 통과됐다.

의사단체가 주장하는 내용의 상당 부분은 약사법 등에 이미 반영돼 있거나 정부가 유권해석 등을 통해 그 시행을 약속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올바른 의약분업을 주장하면서 의약분업을 실질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전문가 집단으로서 의사단체가 취할 수 있는 태도가 아니다.

현재 의료보험 수가가 낮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의사들의 소득이 낮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의사들은 낮은 의료보험 수가를 보전하기 위해 진료의 양을 늘리고,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서비스를 확대해 자신이 원하는 소득 수준을 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약가 인하 이후 일부 개원의사의 소득이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사들이 생존권 위협을 받고 있다는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사실 어려운 것은 의사 만이 아니다. IMF체제 이후 국민 대다수의 소득이 감소했고, 새로운 빈곤층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빈곤문제가 정부의 주요 정책의 하나가 되고 있을 정도다. 의사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을 하려면 먼저 자신의 소득수준과 소득구조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런 투명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국민이 의사들의 부담을 대신 질 수는 없다.

의료보험에 대한 국고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국고지원은 보험적용 수준을 확대하고, 본인부담금을 낮추는데 우선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건강연대는 의사들이 급격한 소득감소로 인해 받은 충격을 이해한다. 또 국고지원 확대 등 국민건강을 위한 주장에는 언제든지 함께 할 생각이 있다.

그러나 낮은 의료보험 수가를 빌미로 의약분업을 무산시키려는 시도는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강창구 <건강연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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