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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사각 보자기’가 핸드백과 옷으로 … 한·일 패션이 만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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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글=서정민 기자 사진=문덕관 studio lamp

전시 시작 첫날 함께 사진 촬영을 한 이효재씨와 후지와라 다이. 이효재씨는 이세이 미야케의 치마를 망토처럼 두른 독특한 발상으로 디자이너를 놀라게 했다.

자르고 버리는 것 없이 사각형 천 형태를 그대로 두고 옷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한 장의 사각 천을 바라보는 시선이 닮은 듯 다른 두 사람. 세계적인 브랜드 이세이 미야케와 한국의 보자기 예술가 이효재씨가 그들이다.

10일부터 12월 15일까지 이세이 미야케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 후지와라 다이와 국내 한복 디자이너이자 보자기 예술가인 이효재씨가 공동 작업한 패션전시가 열린다. 한국과 일본의 상상력이 만나는 자리다.

일본인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가 1971년 설립한 이세이 미야케는 동양의 신비와 독특한 조형성을 표현해 온 브랜드로 매년 파리에서 컬렉션을 선보이며 전 세계 패션 리더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특히 ‘새로운 재단 형태’를 시도하며 73년 발표한 컬렉션 ‘한 장의 천’과 89년 시작한 브랜드 플리츠 플리즈의 ‘주름 잡힌 옷’은 세계 패션사에 ‘혁명’으로 기록돼 있다.

이세이 미야케의 창작력은 미술과 조각, 건축을 아우르며 매년 컬렉션에서 발표될 때마다 ‘옷 이상의 예술’로 평가받아 왔다. 그중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개인의 장르를 초월한 탁월한 디자인 능력뿐 아니라 동서양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일본 문화를 세계에 알려왔다는 점이다. 또한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를 일본 문화와 함께 한 벌의 옷 속에 녹여내는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며 방한한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의 디자인 총괄 책임자인 후지와라 다이를 만나 브랜드의 철학과 이번 ‘한·일 패션의 가교’ 역할을 하게 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의 이효재씨와 협업 파트너가 된 계기.

“한국에서 열리는 첫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한국의 예술가와 협력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 수입업체인 제일모직에 추천을 부탁했고 그때 받은 책이 효재 선생의 보자기 책이었다. 아, 이거라면 이세이 미야케의 정신과 잘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한국의 보자기를 본 적이 있나.

“일본에도 후로시키라는 보자기가 있어서 그리 낯설지 않았다. 또 일본에서는 한때 디자이너와 예술가들 사이에서 퀼트나 패치워크처럼 천을 조각조각 붙이는(한국의 조각보처럼) 작품들이 유행했었다. 그것을 보고 ‘몬드리안의 그림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이후 조각보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래서 처음 효재 선생의 책을 보았을 때는 조각보를 이용한 협업 작품을 구상하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에 와서 효재 선생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또 다른 매력을 느꼈다. 바로 보자기를 ‘싸는’ 형태였다.”

-보자기의 어떤 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나.

“효재 선생은 사각 천 한 장과 고무 밴드 하나로 그 자리에서 옷을 만들고 가방을 만들어냈다. 놀랍고 신선했다. 이세이 미야케의 옷도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굉장히 복잡하고 놀라운 창조적인 면이 숨어 있다. 보기에는 간단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보이려면 여러 노력과 표현법이 연구돼야 한다. 효재 선생의 보자기를 통한 그 발상, 연구 방법이 이세이 미야케와 참 닮았다고 생각했다.

-이세이 미야케가 서양 패션계를 놀라게 한 73년 ‘한 장의 천’ 컬렉션 발표는 ‘새로운 재단’ 형태를 보여주었다. 이효재씨 역시 자르고 버리는 재단 없이 보자기를 이용한다.

“한 장의 자카드 천을 컴퓨터 프로그래밍해서 옷을 만들었는데, 이때 기본이 됐던 것은 작업 과정에서 천을 오려서 버리는 부분이 없게 하고 다른 천을 덧붙이지 않는 등 한 장의 천만으로 완벽하게 옷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부분 역시 효재 선생이 보자기를 이용해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을 실천해온 점과 일맥상통한다.”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는 그동안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의상을 디자인하면서도 일본의 전통문화를 많이 반영해 왔다.

“일본의 보자기인 후로시키·조각보·오리가미(종이 접기)·조친(스프링처럼 늘어났다 좁혀지는 일본의 종이 전등 갓) 등 이세이 미야케의 예전 의상들에서는 확실히 일본의 전통문화가 많이 보인다. 하지만 그도 나도 ‘의식’을 하지는 않는다. 좋은 소재를 보고 멋진 옷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묻어났다고 생각한다. 표현하자면 유전적인 요소일 거다. 그런데 이 인상이 너무 강해서 이젠 중국의 꽃 문양을 응용한 것도 서양 사람 눈에는 ‘일본 꽃’으로 읽히나 보다.”

-아름다운 조형성을 너무 강조하면 일반인들은 쉽게 소화하기 어려운 옷이 되기도 한다.

“컬렉션에서 발표되는 옷들은 그렇다. 그 옷들은 우리가 올해 추구하는 방향과 컨셉트를 집대성해서 보여주기 때문에 조금 과장돼 보인다. 하지만 상업적으로 제작돼 판매되는 일상복은 입기 쉽고 심플하다.”

-한국의 중년 여성들이 ‘플리츠 플리즈’의 주름 잡힌 옷을 아주 좋아한다.

“잘 알고 있다. 이세이 미야케만의 독특한 디자인인데 이것의 장점은 ‘집에 가면 바로 벗지 않아도 되는 옷’, 즉 굉장히 편안하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아름답고 우아하다. 이게 바로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가 추구하는 디자인 철학이다.”

-그런데 너무 비싸다.

“그건 아마 우리만 그러진 않을 텐데. 하하. 내가 입은 양복 가슴 부분을 잘 보면 얇은 줄무늬 뒤에 주머니가 숨어 있다. 어떤 옷에는 봉합 솔기가 없다. 일일이 손으로 가위질을 해 올이 풀리지 않도록 만든 것이다. 평범한 니트처럼 보이지만 사실 사람이 한 올씩 일일이 묶어서 매듭을 지은 스웨터도 있다. 이 외에도 눈으로는 보이진 않지만 입어 보면 알 수 있는 편안하고 멋진 장치들이 많다. 공정이 많이 들어간 옷은 그만큼 비싸질 수밖에 없다.

-이효재씨와의 또 다른 협업 계획은.

“현대에는 간단해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은, 즉 간단해 보이기까지 많은 노하우가 숨어 있는 옷들이 점점 더 고객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이때문에 보자기 노하우는 여러 사람에게 주목받을 것이다. 다음에는 다른 협업 주제를 효재 선생이 제안해주길 바란다. 아주 신선하고 재미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효재씨 초대 받은 후지와라 “놋수저·발우 매력적”

이효재(사진 오른쪽)씨는 후지와라 다이를 자신의 성북동 집으로 초대했다. 한국의 전통문화를 좀더 자세히 알리고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4합 발우를 이용한 저녁식사와 함께 전통음식 조리서 『음식 디미방』의 저자인 장계향할머니가 직접 담가 보낸 전통 술을 대접했다. 후지와라는 “평소 흙을 좋아해서 한국의 전통 도자기에도 관심이 많았다”며 “오늘 처음 보는 놋수저와 발우도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관심을 보였다. 저녁식사 후에는 이효재씨의 지도로 여러 종류의 보자기 싸는 방법을 직접 익혔다.



이효재씨가 후지와라 다이를 성북동 집으로 초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성중앙’ 12월호 ‘명사와 함께-효재의 지구를 살리는 캠페인’을 참고하세요.

매년 톡톡 튀는 이세이 미야케 패션쇼 & 전시회

2010년 주제는 ‘뉴스 믹스’ … 각국의 전통·현대 문양 담아

15일에 있었던 패션쇼 현장

이세이 미야케 브랜드와 이효재씨가 협업한 12벌의 작품은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 일모프레스룸에서 12월 15일까지 전시된다.

전시장에는 또한 지난 2년 동안 후지와라 다이가 총괄 디자인 책임을 맡으면서 전개했던 이전 작품들도 전시된다. 후지와라 다이는 매년 독특한 주제를 선보여 왔는데, 그것을 연구하고 표현하는 방법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옷으로 만들어지는지 과정을 동영상과 옷으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08년 봄·여름 컬렉션에서는 주제인 ‘바람’을 표현하기 위해 유명 진공청소기 회사인 ‘다이슨’과 함께 공동 작업했다. 진공청소기에 들어간 부품을 해체해 의상에 부착, 미래적인 옷을 표현한 것이 주 내용이었다. 컬렉션 무대 끝에 대형 고무 호스를 두어 실제로 바람을 일으켰던 무대 연출도 당시 화제가 됐다.

2009년 봄·여름 컬렉션 ‘컬러 헌팅’ 때는 자연과 가장 가까운 색을 얻기 위해 남아메리카 정글을 직접 탐험했다. 그리고 나뭇잎·나무·흙·강 등 자연의 4가지 요소를 관찰하면서 3000여 개의 색상 샘플을 만들어냈다. 컬렉션에는 이 중 8가지를 소개했다.

2009년 가을·겨울에 보여준 ‘키네틱 프레임’ 또한 흥미롭다. 키네틱 프레임이란 ‘형상’과 ‘움직임’을 의미하는데 의상에 표현됐을 때는 건축학적인 실루엣을 가지되 움직임은 편한 옷을 말한다. 후지와라 다이는 이 작업을 위해 일본 가라데 선수들의 움직임을 컴퓨터로 오랫동안 기록, 직선과 주름이 어울린 옷들을 만들어냈다. 덕분에 정장 슈트를 입고도 움직임이 큰 가라데 동작이 가능했고, 실제로 컬렉션 무대 마지막에는 슈트를 착용한 가라데 선수들이 직접 등장해 동작 시범을 보였다.

2010년 봄·여름 테마는 ‘뉴스(NEWS) 믹스’다. 뉴스는 동서남북의 약자로 ‘세계 각지에서 들려오는 다채로운 정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전 세계 여러 나라들의 전통과 현대 문화를 대변하는 여러 가지 문양을 채취, 각각에서 얻은 영감을 크레용으로 직접 그려 이번 옷들의 문양을 만들어냈다. 세계의 모든 문양이 한 곳에 어울린 화려한 색채의 향연이 포인트다. 이효재씨의 원색 보자기와 어울려서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내는 옷들도 바로 이번 뉴스 믹스 작품들이다. 문의02-2076-7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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