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인도 설치율 13%…'곡예통행' 일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5면

'보행삼불(步行三不)' . 부산의 보행 환경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걷는 게 불안(不安)하고, 불편(不便)하며, 불리(不利)하다는 뜻이다.

시민들은 대부분 걷고 싶어하지 않고, 설령 걷고 싶어도 걸을 만한 인도를 찾기 어렵다. 때문에 부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보행권과 관련한 시민운동이 활발하다. 부산 보행환경의 현주소와 개선방안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

15일 오후 4시쯤 부산시 부산진구 범천1동 부산상공회의소 건물 뒤편 동천로변 도로. 쌩쌩 달리는 차량 곁을 걷고 있는 시민들의 입에서는 불평이 절로 나온다.

인도가 없어 담벽에 붙어서라도 다니고 싶어도 다닐 수가 없다. 차선 밖 너비 1m 남짓한 공간을 주차 차량이 차지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차가 지나가지 않을 때 차도 가운데를 걸어야 한다. 차가 올 때는 주차 차량에 바싹 붙는다.

인도가 없는 길은 상의 후문에서 시민회관까지 약 1㎞ 정도. 불법주차 차량이 없는 곳엔 쓰레기 더미가 잔뜩 쌓여 있다. 달리는 차를 신경쓰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을 정도이다.

이곳뿐만 아니다. 부산환경연구원이 최근 부산지역 도로 2백33만3천6백97m를 조사한 결과 보도가 설치된 곳은 26%인 60만7천2백84m. 보도는 길 양쪽에 있어 실제 보도율은 13%에 불과하다.

그나마 보도 중에 지하보도(27곳 2천6백57m)와 육교(1백46곳 5천23m)가 많고 일반 보도의 경우 블록이 깨지고, 움푹 패인 곳이 수두룩해 걷기가 불편하다.

부산YMCA가 지난해 12월 중앙로.가야로.수영로 주변 보행로 7백98곳을 조사한 결과 2백13곳(26%)이 파손된 채 방치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백65곳(58%)에는 횡단보도조차 없다. 경사가 심해 노약자나 장애인이 걸을 수 없는 곳도 60곳이나 됐다.

이러다 보니 시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 교통환경연구원이 지난해 말 부산시민 1천8백3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보행환경 만족도 조사에서 '좋다' (7.7%)보다 '나쁘다' (43.8%)가 훨씬 많았다.

인도를 차도로 착각하는 운전자도 많다. 부산YMCA가 지난해 12월 실시한 보행로 실태 조사에서 보행로 7백98곳 중 16%인 1백24곳에서 차량이 멋대로 다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YMCA 시민중개실 보행권 모니터요원 김시근(金始根.56)씨는 "부산에서 정상인이라도 10분 이상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보도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행환경이 엉망" 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보행자 사고가 많을 수밖에 없다. 부산지방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1997년 부산지역 교통사고 사망자 4백40명 중 55%인 2백42명이 보행자였다.

보행자 사망률이 전국 평균 36.7%보다 훨씬 높다. "부산에서는 걸어 다니기가 겁난다" 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다.

강진권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