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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세수잉여금 빈곤층 지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해 국세청이 계획보다 더 거둬들인 세수잉여금 3조5천억원의 사용처를 놓고 "막대한 국가채무를 줄이는데 써야 한다" 는 주장과 "끼니조차 제대로 못하는 절대빈곤층을 지원해야 한다" 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찬성]

미국정부가 1998년에 처음으로 흑자재정으로 돌아선 후 채택한 정책노선은 흑자의 일부를 부채 갚는데 사용했으나 대부분은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의료보험확대.사회보장기금확충 등에 돌려 국가의 장기발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는 사회복지비의 지출이 소비성이 아니라 과학기술지원과 마찬가지로 국가발전의 기초가 되는 사회적 인프라 구축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데 따른 것이다.

건전성을 유지해오던 우리 정부재정이 1백20조원대의 부채를 지게 된 주된 원인은 경제위기시에 어려워진 기업과 금융부문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빚을 내서 공적자금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살아남은 자들은 경제위기 이전보다 더 큰 경제적 번영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이에 비해 사회적 취약계층들은 의.식.주의 곤란은 물론 의료.교육 등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채 어렵게 살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두배로 증가한 절대빈곤층의 존재는 경제위기의 후유증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보여주고 있다.

시민단체의 청원과 정부의 의지로 결실을 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이런 빈곤문제에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다.

문제는 이 법의 시행이 올 10월 1일부터라는 점이다. 올 9월말까지 짜여진 정부의 예산 계획은 과거의 생활보호법을 기준으로 짜여져 있어 빈곤층에 대한 체계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응이 힘든 상황이다.

그 결과 다수의 절대빈곤층이 사회적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하루 세끼 식사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노인층과 결식아동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제때에 의료비를 지불해주지 못해 의료보호대상자에 대한 병원의 푸대접은 날로 심각해져 가고 있다.

세수잉여금이 아니더라도 정부는 추경을 편성해 이들의 긴급한 욕구를 돌보아야 할 상황이다. 따라서 세수잉여금의 일부를 빈곤층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것은 당연한 처사다.

세수잉여금의 절반을 사용해 1차 안전망인 사회보험을 보완하고, 2차 안전망인 기초보장을 제공하며, 3차 안전망인 긴급 급식을 실시해 안전망의 사각지대를 긴급히 축소해야 한다.

박능후<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연구실장>

[반대]

예부터 질병과 혼기를 놓친 자녀에 관한 일은 주위에 널리 알려 대책을 수소문해야 한다고 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가가 빚더미 위에 올라앉게 된 실상도 국민에게 알리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불경기로 세수는 줄어든 반면 금융구조조정과 실업대책으로 많은 예산이 소요돼 재정적자가 확대되고 국가채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해말에는 국가채무가 1백30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다 예금보험공사를 통해 투입된 금융구조조정기금 중에서 국가가 떠안아야 할 금액을 정산하면 국가채무는 2백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채무가 국내총생산(GDP)과 대비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관료들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어서는 안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채무가 단기간에 누적됐다는 점, 남북한 대치상태로 국방비 부담이 과중한 점, 그리고 이자율이 높은 점을 감안해 평가해야지 다른 나라와의 단순비교는 곤란하다.

정부가 경제성장률.외환보유액.주가.환율 등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는 치적을 자랑하면서도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규모는 감추고 지나가려는 것은 근시안적인 미봉책이다.

더구나 지난해 국세청 조사인력을 총동원해 거둬들인 3조5천억원의 초과세수를 공돈이 생긴 것처럼 사용처를 찾고 있는 일은 지나치게 무리한 처사다.

올해 예산은 적자로 편성돼 국채를 10조원이나 발행, 보충하도록 돼있다. 따라서 지난해 더 걷힌 세금은 그만큼 국채발행을 줄이는데 사용해야 한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초과징수분 중의 일부를 빈곤층 지원에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생계가 어려운 빈곤층에 대해서는 일시적이고 무계획적인 지원책으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올해 예산이 국회를 통과한지 두달도 안된 시점에서 추가경정예산을 논의해서는 안될 일이다. 행여 총선을 앞둔 선심성 정책이라는 오해를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국가채무는 후손에게 짐을 넘겨주는 가장 부끄러운 유산이다. 이를 줄여나가는 것은 다른 어느 정책과제보다 우선돼야 한다.

이만우<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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