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빵집 ③ 군산 이성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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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2면

이성당은 64년째 전북 군산 중앙로 사거리에서 지역 주민들의 만남의 장소로 여전히 건재하며, 성업 중이다.

대학 시절, 고향이 군산인 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전주에서 고교를 다녔고, 대입학원은 서울로 유학했다. 해서 맘속으로 ‘군산은 정말 작은 도시인가보다’고 생각했다. 대학 졸업반 여름방학 때 그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군산엘 갔다. 친구의 고향 친구가 자동차를 끌고 나와 월명동이며 은파유원지 등 고색창연한 군산의 명소를 구경시켜줬다. 실제 와보니 아담하고 예쁜 도시란 생각이 들었다. 그 군산 초행길에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바로 ‘이성당’이다. 친구가 길거리에서 마주친 그의 동생에게 어디 가느냐고 묻자 “이성당에 사람 만나러”라고 답했다. 차를 몰고 왔던 친구는 “나도 내일 이성당 가야 하는데”라고 했다.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다. “대체 이성당이 뭔데?” 친구는 “군산에서 제일 오래된 빵집인데, 만남의 광장 같은 데”라고 말했다.

15년 만에 다시 찾은 군산의 모습은 다소 변해 있었다. 서해안고속도로 개통으로 서울에서 가는 길이 빨라졌을 뿐 아니라 진입로엔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중앙로 사거리엔 이성당이 그대로 있었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에 들어간 이성당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직원들은 이들을 응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거기에 연로한 어머니와 중년의 세 자매가 빵을 사고 있었다. 이들 세 자매는 모두 군산을 떠나 타지로 출가했다고 했다. 맞이인 이성희씨와 막내 성신씨는 전주로, 둘째 성은씨는 미국으로 갔다. 이날은 성은씨가 귀국해 세 자매가 모두 친정 나들이를 한 참이었고, 가장 먼저 이성당을 찾은 것이다. 성희씨는 “이성당은 마음의 고향”이라고 했다. 성은씨는 “학창 시절 100점을 받으면 아버지가 이곳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는데 난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다”며 웃었다. 이들은 “팥앙금빵과 팥빙수의 맛을 잊을 수 없어 친정에 올 때면 항상 들른다”고 입을 모았다. 성은씨는 “출국 직전 미국의 가족과 친지들에게 줄 빵을 한아름 사갈 예정”이라고 했다. 막내 성신씨는 “전주에 분점을 내달라고 사장님께 수차례 요청했지만 꿈쩍도 않는다”고 말했다.

이성당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제과점이다. 1920년대 후반 일본인이 운영하던 것을 해방 직후 오남례(75) 전 사장의 아주버님이 인수했다. 이후 제수씨인 오 전 사장이 경영을 전적으로 책임졌고, 2003년부터는 오 전 사장의 며느리인 김현주(47) 사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 흔한 분점 하나 없이 한곳에서만 60년 넘게 이어온 이성당은 자타가 공인하는 군산 만남의 광장이다. 330㎡(100평) 남짓한 매장의 100㎡가량은 테이블과 의자로 채워져 있다. 계모임이며 친목모임이 돌아가며 열린다.

이성당의 대표 메뉴는 하루 1000개가량 판매되는 쌀앙금빵(900원)이다. 쌀로 만들어 일반 빵에 비해 더 쫄깃한 데다 팥소가 상당히 두툼해 하나만 먹어도 속이 든든하다. 국산 팥의 가격이 너무 높아 수입산과 섞어 쓰고 있지만 적당한 온도에서 장시간 팥을 끓여내는 비법 덕에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는다. 특히 김 사장의 남편이 식품업체(대두식품, 햇쌀마루)를 운영하고 있어 재료 확보가 타업체에 비해 수월하다. 야채로만 속이 가득 찬 야채빵, 커리와 당면만 들어갔지만 초라하지 않은 크로켓도 하루 500개 이상 팔린다.

이성당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쌀로 만든 빵이 30%가량 된다는 점이다. 최근 출시된 1500원짜리 건강 빵 ‘블루’는 쌀과 소금으로만 만들어졌다. 이스트를 쓰지 않고 천연 효모로 발효했다. 김 사장은 “이런 빵들은 냉동 유통하면 맛이 떨어져 프랜차이즈 업체가 엄두를 못 낸다. 윈도 베이커리의 블루오션이 여기에 있다. 하지만 많은 윈도 베이커리들이 시간과 비용 문제로 도전을 못해 아쉽다”고 말한다.

군산에도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 있다. 가격 경쟁력도 이성당을 앞선다. 하지만 이성당의 위용은 그대로다. 이유가 뭘까. 김 사장은 “제품 질을 유지하기 위해 분점을 못 내도 불평 없이 찾아 주시는 손님들 덕분에 이성당이 60여 년을 이어왔다”며 “이런 감사의 마음이 손님들께도 전달된 게 아닌가 한다”고 답했다. 그는 “자녀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이성당을 물려줘 계속 키우고 싶다“고도 했다.

글=이가영 기자
사진=홍석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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