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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문열과 '젖소부인'의 관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홍위병을 돌아보며' 쓴 이문열씨에 말한다

"끊임없이 나도는 음모설(陰謀說)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는 정부나 여당이 총선연대의 조직과 활동에 개입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을 뿐더러 시민단체의 선의(善意)를 의심할 근거도 없다…. 그런데도 총선연대 시민단체의 활동을 보면 자꾸 홍위병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활동이 이제 시작이며, 정말로 중요한 전개와 변화는 앞날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

며칠 전 소설가 이문열이 바로 이 자리에서 한 말이다. 음모론. 한 정당의 대변인을 졸지에 코메디계의 황제로 등극시켰던 이 조잡한 얘기가 그의 말대로 항간에 '끊임없이' 나돌고 있다.

왜 그럴까. 나는 음모론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그것을 정말로 믿어서 주장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설마 한 나라를 이끌어나가시는 분들이 그 정도로 머리가 나쁘겠는가.

아마 다른 이유가 있을 게다. 즉 거짓말도 참말과 똑같은, 아니 때로는 더 큰 정치적 효과를 내기 때문일 게다. 히틀러의 말대로 '대중들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에 더 잘 속는다. '

<에로영화 스타 젖소 부인과 소설가 이문열의 관계는?> 이런 제목의 기사는 대중을 즐겁게 해준다.

설사 그 기사가 '아무 관계도 없다' 는 허탈한 내용을 담을지라도 말이다. 혹시 이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 경우에는 표현을 슬쩍 바꾸면 된다.

가령 이렇게. "젖소부인과 이문열 사이에 내연의 관계가 있다는 '뚜렷한 증거' 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즉 두 사람의 관계는 한 마디로 '앞으로 있을지도 모르는 관계' 다. " 이건 나치 선전상 괴벨스가 즐겨 사용하던 어법이다.

어쨌든 아무 '증거' 나 '근거' 도 없이 이문열은 과감하게 총선연대를 중국 문혁기의 '홍위병' 에 비유한다.

고약한 상상력이다. 총선연대의 활동의 근거는 국민주권을 명시한 우리 헌법에 있다.

참여민주주의가 대의제와 함께 민주주의 문화를 지탱하는 또 하나의 기둥이라는 것은 현대의 상식이며, 이 상식은 이미 대부분의 나라에서 실천되고 있다.

그런데 왜 그의 상상력은 총선연대의 이미지를 찾아 민주국가가 아니라 하필 문혁기의 중국으로 달려가는 걸까. 이렇게 민주주의를 볼셰비즘과 동일시하는 것도 이미 히틀러가 한번 써먹었던 수법이다.

'증거' 도 '근거' 도 없기에 '총선연대〓홍위병' 이라는 등식을 만들기 위해 그는 미래로 날아가야 했다. 즉 총선연대는 앞으로 홍위병이 될 수도 있다. 심지어 조직폭력배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총선연대는 아직 홍위병이 돼 보지도 못한 채 벌써부터 그 섬뜩한 이미지를 뒤집어쓰게 된다. 이데올로기는 이런 식으로 작동하는 법이다.

음모론(陰謀論)은 포르노다. 언젠가 이문열은 마광수를 질타했지만 정말로 부도덕하고 몰취향한 것은 바로 이 정치 포르노다.

제 본능을 적나라하게 표출하는 동물과 달리 인간은 그것을 합리적이며 논리적인 언어로 분절화(分節化)할 수가 있다.

특히 그 일만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을 흔히 문인이라 부른다. 이 점을 깜빡 잊은 이문열씨에게, 이제 그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 아무쪼록 그 언어폭력에 속수무책으로 얻어맞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떠한지체험해보는 귀한 시간이 됐으면 한다.

"이문열씨는 지금은 존경받는 소설가이지만 앞으로는 모 정당의 대변인이 되거나 그 당의 공천을 받을 수도 있다. 끊임없이 나도는 야합설에도 불구하고 물론 현재까지 이런 발언을 하는 이문열씨가 정치권 일각의 사주를 받았다는 뚜렷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을 뿐더러 그의 선의를 의심할 근거도 없다. 그런데도 그의 행각을 보면 자꾸 나치 친위대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아마도 그의 활동이 이제 시작이며, 정말로 중요한 전개와 변화는 앞날에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

진중권 <자유 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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