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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Knowledge <101> 영국 왕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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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21세기인 지금도 지구촌에는 왕이나 여왕이 있는 나라가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영국 왕실은 최고의 뉴스메이커입니다. 찰스 왕제자와 고 다이애나비의 결혼·이혼과 다이애나의 죽음, 두 아들인 윌리엄과 해리 왕자의 일거수일투족이 영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동화’처럼 보이지만 동화일 수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하현옥 기자

“여자는 후순위, 가톨릭은 안 돼” 300년 묵은 왕위계승법 손질하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아버지 조지6세가 사망한 뒤 1952년 2월 6일 왕위를 넘겨 받았다. 대관식은 이듬해인 53년 6월 2일 런던 웨스터민스터 대성당에서 거행됐다.[자료: The official website of the british monarchy]

영국 공영방송 BBC가 3월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영국 국민의 76%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이후에도 입헌군주제를 지속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입헌군주제의 원칙을 지키는 왕실에 대해 영국 국민은 여전히 사랑과 신뢰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찰스 왕세자의 이혼과 다이애나 비의 사망 등 여러 사건을 겪으며 지지율이 곤두박질 쳤던 경험도 있다. 왕실이라고 시대의 변화와 국민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법이다. 최근에는 왕위 계승 규정 개정과 왕실 예산 책정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왕위 계승, 남녀 동등하게

트리니다드토바고의 수도 포트오브스페인에서 27~29일 열리는 영연방 정상회의에서는 중요한 개혁안이 등장할 전망이다. 올해 초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와 버킹엄궁은 왕위를 계승할 때 여성에게도 동등한 권리를 인정하고 종교적 차별을 없애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개혁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1701년 제정된 영국의 왕위계승법(Act of Settlement)에 따르면 남성 장자상속권이 보장된다. 남성 계승권자가 여성 후계자에 비해 우선권을 가지며, 남성 중에서는 장자의 우위가 인정된다. 단순하게 말하면 영국 왕실에서 여성은 남성 계승권자가 없을 경우를 대비한 ‘최후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이 때문에 왕위 계승 순위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둘째로 태어난 앤 공주는 조카이자 찰스 왕세자의 아들인 윌리엄·해리 왕자뿐만 아니라 남동생인 앤드루·에드워드 왕자 및 이들 자녀보다 뒤인 10번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만약 법을 개정해 여성에게 동등한 계승권을 인정하면 앤 공주는 찰스 왕세자와 윌리엄·해리 왕자의 다음 순위인 네 번째 서열로 올라가게 된다.

이와 함께 개혁안은 왕위 계승자가 왕실의 종교인 성공회가 아닌 로마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거나 개종하면 왕위 계승권을 박탈하는 조항을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1688년 제정된 권리장전은 영국 성공회를 보호하기 위해 왕위 계승자가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이 규정에 따르면 윌리엄 왕자는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지 않아야만 왕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사촌인 켄트 마이클 왕자는 1978년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면서 왕위 계승권을 포기했다. 앤 공주의 아들이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외손자인 피터 필립스와 지난해 결혼한 캐나다인 오텀 켈리는 남편의 왕위 계승권을 지키기 위해 결혼하기 전 자신의 종교인 가톨릭을 포기했다.

영국 정부는 모든 종류의 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왕위 계승 서열의 변화는 관련된 법이 많은 데다 영국 왕을 국가 원수로 삼고 있는 15개 영연방 국가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개정 작업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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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도 고통 분담해야”

빡빡한 정부의 살림은 왕실에도 고통 분담을 촉구하고 있다. 10년 단위로 책정되는 왕실 예산 문제를 둘러싼 의회와 왕실의 신경전이 만만치 않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왕실 예산안과 관련, 버킹엄궁과 재무부 사이에 비공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며 “막대한 재정 적자에도 왕실 예산은 삭감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1971년 왕실 예산 지원 규정을 만들면서 의회가 예산을 삭감하지는 못하고, 증액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국 왕실 예산은 10년 단위로 책정된다. 왕실은 내년 7월까지 의회에 2011~2020년 예산안을 제출해야 한다. 지난 20년간 매년 790만 파운드(154억)의 예산이 배정됐다. 하지만 이 예산안은 왕실 지출의 30% 수준에 불과하다. 또 왕실 연례 재정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까지 건물 수리와 환경 개선 등을 위해 지출해야 할 돈이 4000만 파운드에 이른다. 이 때문에 왕실 측은 20년 동안 동결돼 있던 예산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예산 부족분을 충당하기 위해 비상시를 위해 마련한 적립금 2100만 파운드 중 700만 파운드를 사용해 1~2년 사이에 적립금도 고갈될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왕실 예산의 삭감까지 주장하는 의원들의 입장은 좀 다르다. 지난 20년간 왕실 예산은 물가상승률을 7.5%로 계산해 책정됐지만 1990년대 실제 물가상승률은 3.7%에 불과해 왕실이 3500만 파운드의 적립금을 비축했다는 것이다. 노먼 베이커 자유민주당 의원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공공부문 지출을 줄이는 마당에 왕실만 더 지원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왕실 운영 자금이 부족하면 입장료를 받고 윈저성을 개방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일부 의원은 앤드루 왕자가 골프 경기에 참석하는 비용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해서는 안 된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한편 왕실의 특권을 폐지하는 개혁안과 관련해 의회는 “왕실의 특권 폐지가 위기 대응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고, 특권의 범위가 모호한 영역도 있는 만큼 개혁안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왕가의 두 얼굴, 노블레스 오블리주 그리고 끊임없는 스캔들

다이애나 비의 교통사고 이후 충격에 빠진 영국 왕가의 일주일을 담은 영화 ‘더 퀸’에서는 여왕의 다양한 모습이 그려진다. 혼자 랜드로버를 운전해가다 고장난 차를 확인하거나 개와 함께 산책하는 등 인간적이며 평범한 여왕의 면모. 엄마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을 손자를 보호하기 위해 왕실의 별장으로 떠나는 할머니의 모습. 총리와 만나 국정을 논의하고 여론과 전통 사이에서 고민하며 총리실과 갈등을 빚는 군주의 고뇌. 이러한 장면들을 필름에서 만나볼 수 있다.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는 원칙에 따라 여왕은 정치에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다만 국가 수반으로 의회를 소집하고 해산하는 권한이 있다. 선거로 선출된 총리를 임명하고 매주 화요일 총리를 만나 회의도 한다.

군 복무와 자선활동 국민 존경 받아

영국 왕실은 특권층에 요구되는 도덕적 의무에 충실한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삼촌인 켄트 공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부대를 시찰하고 돌아오다 목숨을 잃었다. 여왕도 2차 대전 때 영국 여자국방군에 입대해 소위로 복무하며 군용 트럭을 몰았다. 여왕의 아들인 앤드루 왕자는 1980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에서 헬기 조종사로 전장에 투입됐다. 이러한 전통은 손자까지 이어져 영국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윌리엄 왕자는 영국 공군에서 헬기 조종사 훈련을 받았으며 지난해 북대서양에서 미 해안경비대와 함께 마약선 소탕 작전에 나서 마약 밀매선을 격침하는 데 기여했다. 서열 계승 3위인 해리 왕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10주 동안 복무했다.

자선 활동도 왕실 구성원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업무다. 찰스 왕세자가 직·간접적으로 후원하는 금액만 연간 1억2000만 파운드(2300억원)에 이르며 6개의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윌리엄과 해리 왕자는 지난해 오토바이를 타고 아프리카 대륙 비포장도로 1600㎞를 여행하며 모은 30만 파운드(5억8800여만원)를 만델라 아동기금과 유니세프에 기부했다.

세기의 결혼, 불륜·이혼으로 마감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큰아버지인 에드워드 8세는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린’ 인물로 더 유명하다. 그는 미국 출신의 이혼녀 월리스 심슨과 결혼하기 위해 1936년 왕위에서 물러났다. 이혼녀는 왕비가 될 수 없다는 법에 따라 왕관을 동생인 조지 6세에 넘기고 윈저 공으로 살아갔다. 파리에서 결혼한 윈저 공 부부는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뒤 현재 윈저 궁에 묻혀 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동생이자 조지 6세의 딸인 마거릿 공주는 파란만장한 애정행각으로 숱한 염문을 뿌렸다. 17세 때 공군 조종사인 피터 타운젠트와 사랑에 빠졌지만 왕실의 반대로 결혼을 포기했다. 사진작가인 앤서니 암스트롱 존스와 60년 결혼했지만 78년 이혼하면서 헨리 8세 이후 이혼한 첫 왕족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필립 공과 47년 결혼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순탄한 결혼 생활을 이어왔지만 자녀의 스캔들과 이혼을 지켜봐야 했다. 특히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의 결혼 생활은 영국 신문의 단골 메뉴였다. 81년 런던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 거행된 이들의 결혼식은 ‘세기의 결혼식’으로 불리며 전 세계 TV로 생중계됐다.

하지만 이들의 결혼 생활은 곧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찰스와 그의 오랜 연인인 커밀라 파커 볼스의 부적절한 관계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다이애나 비는 86년 승마 교사였던 왕실 근위대 소속 제임스 휴이트 대위와 불륜에 빠졌다. 찰스와 커밀라가 애정을 표현하는 대화가 담긴 테이프가 공개된 92년, 왕세자 부부는 별거에 들어가고 96년 이혼했다. 다이애나는 97년 연인인 도디 알 파예드와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하며 드라마와 같은 삶을 마감했다. 길고도 오랜 연애 끝에 찰스와 커밀라는 2005년 결혼했다. 이에 따라 커밀라는 영국 왕실 역사에서 왕위 계승자와 정식으로 결혼한 첫 이혼녀로 ‘왕세자비’가 아닌 ‘콘월 공작부인’으로 불린다. 찰스가 왕이 되더라도 ‘여왕’이 아닌 ‘왕의 배우자(프린세스 오브 콘소토)’라는 칭호를 갖게 된다.

찰스뿐 아니라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딸인 앤 공주도 평민인 마크 필립 대위와의 결혼 생활을 82년 마감했다. 재혼한 티머시 로런스와의 결혼 생활도 삐걱댄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앤드루 왕자도 형인 찰스 왕세자와 같은 해(96년) 사라 퍼거슨과 이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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