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 병무비리도 맞춤 수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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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맞춤수사' 가 될 병무비리 '옷 로비 사건에 연루돼 사법처리된 검찰출신 인사들이 명예회복에 나서고 있다.

김태정(金泰政)전 검찰총장은 얼마전 현직 시절에 관심을 쏟았던 자녀 안심하고 학교보내기운동 재단에 성금을 냈다. 현재는 '부인과 함께 '미국 법률회사를 둘러보기 위해 여행 중이다.

다른 한 인사는 총선때 고향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민주당 후보로 모씨가 공천받을 경우 승리가 확실하다며 검찰의 한 간부가 그를 부추기고 있다는 설까지 그럴 듯하게 나돈다.

반면 원인 제공자들은 당연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억울하다고 할 수 있는 신고를 겪고 있다. 최순영(崔淳永)전 신동아그룹 회장 부부는 재판에 계류 중이다.

둘째 아들은 병무비리 혐의로, 로비 담당자는 불법취업 혐의로 각각 조사를 받고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지난해 같은 건을 두차례나 수사하고 총수를 구속하는 등 홍역을 치른 검찰로부터 분풀이를 당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사건은 이대로 끝날 것인가. 재수사를 담당했던 대검 수사팀 내부의 갈등에 대해서 말들이 분분하다. 소식통에 따르면 어느 기관이 사직동팀보다 먼저 내사를 했다.

이 부분을 조사하면 실력자들의 개입 사실이 드러나고 대통령에게 올린 보고서 축소.은폐 여부를 파헤칠 수 있었다고 한다.

수사팀은 진상만 정확히 가려진다면 박주선(朴柱宣)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불구속해도 좋다고 상층부에 건의했다.

朴전비서관에게는 그와 친한 간부를 통해 세차례나 구속을 피할 수 있는 조건을 통보했다. 朴전비서관은 이에 따르지 않았고 간부들은 朴전비서관 외에 다른 인사들의 소환을 부담스러워했다는 것이다.

사건과 관련, 기소된 여섯명의 재판은 '그들이 불구속 상태인데다'워낙 쟁점이 많고 당사자들의 진술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재판의 장기화는 불가피하다. 법정공방 과정에서 사건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없지 않다. 진행 중인 병무비리 수사를 지켜보노라면 옷 사건의 전철을 밟는 느낌이 든다.

지난해말 여당의 한 국회의원은 고위층에게 병역비리 연루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의 명단을 보고했다고 한다.

보고서는 "검찰이 수사하면 50여명은 구속이 가능하다" 고 언급했다. 연초 반부패국민연대는 지도층인사 2백여명 가족의 병무비리를 제보받았다고 발표했다. 이단체는 누군지 공개하지 않지만 제보자는 현역의원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다른 시민단체에도 자료 전달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통령은 민주당 총재 취임사에서 50년에 걸친 고질적인 병역기피를 뿌리뽑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청와대 관계자는 병무비리에 연루된 정치인 50여명을 내사 중이라고 말했다.

지난 2년여에 걸친 군 특별수사팀의 활동에 정통한 인사에 따르면 수사팀에서 작성한 문제의 명단은 수사팀의 한 관계자를 통해 유출됐다. 반부패국민연대-청와대를 거친 '명단을 검토한 대검은 곤혹스러운 표정이다. 지금까지 병무비리가 병역법 위반으로 구속된 사례가 드물고 뇌물수수로 처벌해왔다.

뇌물수수 공소시효는 5년', 액수가 많아 특가법을 적용해도 7년인데', 이에 해당하는 인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간부들은 "그 의원이 고위층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과장.허위 보고했다" 고 단정했다. 명단을 보고받은 고위층이 특별수사팀의 수사 미흡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거나 수사기관에 재수사 지시를 내리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국가기관을 못믿고 시민단체의 힘을 동원해 여론몰이 과정을 거쳐 과제를 해결하려는 오랜 체질 탓은 아닌지 의아스럽다.

검찰의 한 간부는 "솔직히 이 내용으로는 수사가 어렵다.그러나 못한다고 할 경우 수사 착수를 공개적으로 밝힌 대통령의 체면도 있고 국민적 공감을 사고 있는 시민단체의 '상승 분위'기를 꺾게될 수도 있다. 어쩔수 없이 수사 모양새는 갖춰야 할 것 같다" 고 피력했다.

검찰은 조만간 병무비리 수사체제를 구성할 계획이다. '실패한 로비' 라는 예단에 끼워맞추듯 옷 로비를 일단 마무리지은 검찰이 이번에는 체면 살리기용 '맞춤 수사' 를 어떻게 해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도성진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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