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연휴 볼만한 우리영화]'박하사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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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45면

알맹이 없는 억지 웃음과 설익은 스토리, 엉성한 연기 때문에 아직도 한국영화하면 설레설레 고개부터 젓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면 오랜만에 '박하사탕' 을 보러 극장에 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국영화를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슬프되 눈물을 강요하지 않고 간간이 웃기되 뒷맛이 개운하며, 내 주변에서 보는 인물들이 스크린에 들어가 있는 듯 연기는 자연스럽다.

소설가 출신의 이창동 감독이 만든 '박하사탕' 은 다루는 주제의 묵직함때문에 진지한 관객들로부터 호응을 넓혀가고 있다.

박완서.황인숙.황지우.이문열 등 한때 동료였던 문인들이 '이제 그를 완전히 영화에 뺏겼다' 며 '행복한 작별' 을 고할 만큼 높은 점수를 주고 있으며 인터넷에서는 '박하사탕 두 번 보기' 운동이 일고 있을 정도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서울에서만 개봉 한달 만에 20만을 넘었다. 40대의 중년 남성이 과거로 거슬러 가며 삶의 역정을 되돌아 보는 이야기인 이 영화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고찰이면서 개인의 내면 탐험이기도 하다.

정치적으로 엄혹했던 1970년대와 80년대, 경제적인 풍요 속에서 개인들간 욕망의 충돌이 전면화되는 90년대 풍경이 시간의 축을 따라 흐른다.

누구는 세계영화사에 기록될 걸작이라고까지 흥분하지만 그건 과장된 언사인 것 같고, 우리가 사는 동시대와 제대로 호흡하는 작품이 적었던 한국영화계의 풍토 속에서 소중한 결실인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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