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동산 30년…살짝살짝 맛이 바뀌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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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그 맛이 아닌데…."

회사원 오영훈(42)씨는 최근 '맛동산'을 사먹으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어릴 적 구멍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어머니를 졸라 먹었던 맛동산과는 조금 다른 맛을 느낀 것이다. 오씨는 "맛이 달라진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진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마 어렸을 땐 과자가 별로 없어 너무 맛있게 먹었기 때문일 것도 같다"고 말했다.

맛동산과 같은 제품은 시장에 나온 지 30년이 넘은 장수 브랜드다. 오씨와 같이 옛 추억을 되살리려고 한 입 베어 물면 맛이 예전과 다르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 비밀은 장수 브랜드들이 소비자의 입맛과 기호에 맞춰 조금씩, 꾸준히 맛을 바꾸어 왔기 때문이다.

출시 30년째인 해태제과의 '맛동산'은 처음 나왔을 때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딱딱한 과자였다. 그러나 점차 소비자의 입맛이 부드러운 쪽으로 바뀌면서 해마다 조금씩 더 부드럽게 만들었다. 기존의 딱딱한 식감을 바삭하면서도 부드럽게 하기 위해 반죽 과정에서 발효단계를 추가했다. 이스트가 들어간 반죽을 튀기면 안쪽의 조직감이 살아있어 훨씬 더 부드러운 맛을 낼 수 있었다.

해태제과의 '에이스'는 최근 담백한 맛을 선호하는 소비자의 입맛에 따라 유지 성분을 줄이는 다이어트를 했다. 유지 성분을 줄이면 비스킷이 쉽게 부스러지고 텁텁한 맛을 낼 수도 있다. 그래서 해태제과는 최종 처리 단계에서 유지를 최대한 얇게 골고루 바르는 신기술을 도입했다. 그 결과 담백한 맛이 입 안에서 오래갈 수 있었다고 한다.

롯데제과의 '쥬시후레쉬''스피아민트''후레쉬민트' 껌은 처음 나왔을 때에는 지금 제품보다 훨씬 거친 느낌이었다. 그래서 한국인의 턱뼈 크기와 구강 면적에 맞도록 껌의 질감을 부드럽게 만드는 게 롯데제과의 숙제가 됐다. 이후 베이스(하얀 덩어리) 표면에 줄무늬를 넣는 등 부드럽게 씹히도록 만드는 작업을 계속해 왔다.

오리온은 "지름 7㎝의 '초코파이'에는 30년 내공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고 설명한다. 초창기 초코파이는 씹을 때 가루가 많이 나오는 편이었다. 촉촉함을 유지하려면 수분 함량을 높여야 하는데, 이럴 경우 곰팡이 때문에 맛이나 제품이 변질될 우려가 컸다. 숱한 실패 끝에 오리온은 결국 곰팡이 오염 없이 수분 함유량을 높이는 방법을 알아냈다. 그 결과 초코파이가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

농심 '새우깡'은 지난 98년 새우 함량을 6.8%에서 7.0%로 늘렸다. 0.2% 차이지만 새우 냄새와 맛이 훨씬 강해졌다.

반면 전혀 맛의 변화가 없는 제품도 있다. 빙그레의 '바나나 우유'는 매년 10번 이상 소비자 조사를 한다. 당도.원유 함량 등 배합성분을 바꾼 새 제품을 내놓지만 언제나 소비자의 선택은 기존 제품이었다고 한다. 매년 제과 시장에 250여종의 신제품이 쏟아져 나온다. 그 가운데 80%가 2년을 못 넘기고 사라진다. 그런데도 장수 브랜드가 30년 넘게 소비자의 손길을 받아온 데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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