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 안맞는 전세금 대출 서민들 지원취지 빗나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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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서울 신림동에서 월세로 살고 있는 주부 李모(31)'씨는 서민들의 전세자금을 전세금의 절반, 최대 5천만원까지 빌려주겠다는 정부 발표를 접하고 기대에 부풀었다.

서울 변두리에 있는 17평 정도 아파트의 전세 시세가 4천만원선이므로 전셋값의 절반인 2천만원을 대출받을 요량이었다. 그러나 3월부터 시행되는 이번 지원대책의 세부절차를 주택은행에 문의하자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남편의 연간소득이 1천2백만원 가량이라고 알려주자 은행직원은 "그만큼만 융자받을 수 있다" 고 말했다.

李씨처럼 정부발표만 믿고 전세금 융자계획을 세웠다가 실망하는 서민들이 늘고 있다.

지난 10일 정부는 총 1조2천억원을 지원하기로 한 전세자금의 경우 연간소득 3천만원 이하 무주택자들이 대출받을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막상 대출받는데 필요한 보증문제로 인해 신청자의 연간소득만큼만 대출이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세금대출은 담보가 없기 때문에 신용보증기금이 대출신청자에게 주택신용보증을 서주고 이를 토대로 집행된다.

신보의 보증한도는 신청자의 연간소득으로 규정돼 있다. 따라서 정부발표대로 전세금 신청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상한선은 5천만원이 아니라 연간소득 상한선인 3천만원에 불과하며, 소득이 적으면 적을수록 대출금도 적어지는 것이다.

다만 집값의 3분의1, 최대 6천만원까지 지원되는 주택구입자금 대출은 구입하는 집을 담보로 잡기 때문에 대출한도까지 집행될 예정이다.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현행 법규상 전세금에 대해 담보를 설정할 방법이 없어 어쩔 수 없다" 면서 "다만 맞벌이 부부는 양측 소득을 합산한 액수만큼 대출을 받을 수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대책이 실효를 거두려면 보증문제에 대한 개선책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 김우진 박사는 "신보의 주택신용보증 관련규정에 특례를 두어 이번 대책의 지원대상자에 한해서는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한도까지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고 지적했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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