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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입양·낙태 대국’ 오명 벗자면 미혼모 지원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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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9일자 뉴욕 타임스가 한국 출신 입양아들의 힘겨운 현실을 다룬 특집 기사를 게재했다. 1953년 이후 지난해까지 약 16만3000명의 한국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됐으며 그중 대다수가 미국으로 건너갔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한 연구소가 한국인 입양아들에 대한 실태조사를 해보니 대부분이 성장기에 갖가지 인종차별을 당했고 그로 인해 정체성 혼란을 겪은 걸로 나타났다. 스스로 백인이라고 여기거나 차라리 백인이 되고 싶다는 응답이 78%나 되는 것만 봐도 이들이 견뎌온 고통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간 ‘고아 수출국’의 오명을 벗기 위해 애써왔지만 여전히 적잖은 한국 아이들이 낯설고 물 선 타국으로 입양되는 게 현실이다. 이들은 거의 미혼모가 낳은 아이들이다. 지난해 해외로 입양된 1250명만 해도 90%가 그랬다. 미혼모와 그들의 자녀에 대한 우리 사회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말 많고 탈 많은 해외 입양이 끊이질 않는 것이다.

한 달 전엔 바로 이 문제를 꼬집는 특집기사가 같은 신문에 실렸었다. 한국 사회가 ‘미혼모=범죄인’ 취급하기 때문에 대부분 미혼모가 아이를 키울 권리를 포기하고 낙태나 해외 입양을 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손 놓고 있는 한국 정부 대신 성인이 되어 한국에 돌아온 입양아와 외국 양부모들이 나서서 미혼모 지원활동을 펼치는 사연도 소개했다.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뤄 주요 20개국(G20)의 일원까지 된 나라로서 남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정부의 미혼모 지원정책이 지지부진했던 건 혼전 성관계를 금기시해온 사회 통념 탓이 크다. 물론 미혼모가 되는 게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젊은 세대의 성의식이 급변하면서 미혼모가 꾸준히 나오고 있는 게 우리 현주소다. 2007년 공식 통계에 잡힌 10대 미혼모만 3500여 명에 달한다. 가정과 학교에서 책임을 강조하는 성교육을 실시해 예방에 만전을 기하는 게 우선이다. 하지만 기왕 미혼모가 된 학생과 성인 여성들을 위한 사회적 보호장치도 마련되지 않으면 안 된다.

가장 시급한 것 중 하나가 학생 미혼모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지난해 말 교육과학기술부의 조사 결과 학생 미혼모의 85%가 학교를 그만뒀으나 대부분 학업을 계속하길 원했다. 때마침 방한 중인 칠레의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에게서 배워야 한다. 그는 집권 후 저소득층을 위한 국립 유아원을 수천 개나 세웠는데 그중엔 고등학교 내에 지은 것도 있다. 학생 미혼모들이 아이를 맡기고 공부를 마친 뒤 직업을 얻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게 배려한 조치다.

학생 미혼모들이 학업을 계속하지 못할 경우 실업과 빈곤으로 이어져 그들의 자녀까지 소외계층이 돼버릴 가능성이 크다. 세계 최저 출산율로 아이 한 명이 귀한 우리나라에서 미혼모의 자녀라고 함부로 키워서야 되겠는가. 미혼모 지원정책은 ‘입양 대국’ ‘낙태 공화국’의 굴레를 벗고 저출산 시대에 현명하게 대처하는 해법이 될 수 있음을 유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