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판 동강댐' 건설 주민투표서 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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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일본 지방자치단체 주민들이 처음으로 중앙 정부의 대형 공공사업에 대해 찬반투표로 사업을 거부했다.

시코쿠(四國)의 도쿠시마(德島)시 주민들은 23일 관내 하천인 요시노가와(吉野川)에 홍수 방지용 인공둑을 만들기로 한 건설성 계획에 대한 찬반투표에서 90%의 압도적인 표차로 반대했다.

그동안 건설 반대파 시민단체들은 "홍수방지는 기존의 둑으로 충분하다.

둑 신설은 정치인들의 생색내기용이며 세금을 낭비하고 환경만 해친다" 고 주장했고, 중앙정부와 찬성파 시민단체들은 "홍수방지와 고용증대를 위해 필요하다" 고 역설해왔다.

그동안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소 등 꺼림칙하게 여기는 시설을 설치하는 국책사업에 주민들이 표결로 반대의사를 표시한 경우는 있었지만 대형 공공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반대는 처음이다.

이에 따라 요시노가와 둑 신설 문제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온 고이케 마사카쓰(小池正勝)시장은 이날 밤 주민의 의견을 받아들여 둑 건설에 반대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건설성은 투표 결과에도 불구하고 치수(治水).이수(利水)를 위해선 둑 신설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어서 이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도쿠시마시의 주민 투표는 과거 고도 성장기 여러 혜택을 지역에 가져다준 공공사업이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음을 보여준 단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중앙정부.지방자치단체 모두 거액의 부채를 안고 있으면서도 정치권의 기득권 놀음이 돼온 공공사업은 이제 주민들의 합의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투표 결과는 공공사업을 축으로 한 정부의 경기부양대책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기도 하다.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따른 주민 투표는 지금까지 원자력발전소나 산업폐기물 처리장 입지 주민들이 이용한 의사표시 수단이었다.

지역에 '혜택' 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인식된 공공사업에 대한 주민 투표는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투표는 '공공사업은 무조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된다' 는 전통적인 시각을 깨뜨린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주민투표가 가능하게 된데는 1997년 하천법이 개정된 것과도 맞물려 있다.

개정 하천법에 '주민 의사 반영' 과 '환경 정비와 보전' 이 들어가면서 주민들이 대형 하천사업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토건국가 일본' 이 도마에 오른 이번 투표 결과를 중앙 정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주목된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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