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생명] 3. 늘어나는 수명- 찬성의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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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 통계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20세기초 조선인의 평균수명은 겨우 24세에 불과했다.

영아사망률이 높았을 뿐 아니라 천연두.콜레라 같은 전염병도 자주 돌았다.

굶주린 사람이 늘 죽음 근처에 널려 있었다.

불과 50년, 1백년전의 일이다.

그러나 20세기 말엽에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20세기 초엽보다 꼭 50세 더 증가했다.

1997년도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남자 70.6세, 여자 78.1세다.

오늘날의 시인은 더 이상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를 읊을 수 없다.

이런 변화가 의학 수준의 향상 때문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보건학계의 정설이다.

공중보건.영양.주거.경제형편이 이전 시대보다 월등히 좋아졌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잘 먹고, 좋은 데서 기거하고, 좋은 옷을 입게 된 덕택이다.

인간의 한계수명이 그렇다고 해서 연장된 것은 아니다.

20세기에 의학이 급속히 발달했다 해도 모든 인간은 옛날처럼 1백세 이상 살기는 여전히 힘들다.

주요 질병은 극복했지만, 노화라는 생명과정을 늦추거나 멈추게 하는 데는 전혀 성공하지 못했다.

최근 유전공학이 크게 발달하면서 유전자 수준에서 노화의 비밀이 차츰 벗겨지고 있다.

성급하기는 하지만 21세기 첫 4반세기에 노화를 진행시키는 유전자를 알아내 노화를 억제하는 기술이 어느 정도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1백년간 평균적으로 50년을 더 살게 되었다면, 이후 백 년 동안에는 지금보다 수십년을 더 살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수명연장이 가져올 득(得)이라면 삶의 기회를 더 맛보고, 죽음의 공포로부터 크게 자유로워졌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더 오랜 삶을 맛보고, 일찍 죽는 공포에서 벗어난다는 사실은 개개인의 실존(實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물론 경제활동인구가 크게 줄고, 사회에서 소외되는 노인이 늘어나며 노인병의 고통이 확대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평균수명 1백세 또는 1백20세의 미래 사회에서는 수명연장으로 인한 노인의 생리적.심리적.사회적 고통은 더욱 증가할 것이다.

나아가 경제 생산성이 떨어져 사회구조의 탄력성이 전반적으로 악화될 수 있다.

또 게다가 수명 연장이 유전자 조작에 의해 달성될 것이기 때문에 생명 윤리의 파괴로 인한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장수가 행복으로 느껴질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장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이나 사회에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개인적으로 오래 산다는 것 자체는 인간이 현실 속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본능적 욕구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장수는 결코 생물학적 생존 시간을 연장함으로써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장수는 사회.경제.문화적 조건이 더욱 인간 생존에 적합해질 때 가능하다.

삶의 질이 좋아질수록 장수하는 것이라면 장수는 곧 사회의 질을 가늠하는 것이며 개인의 행복지수의 상승을 의미하는 것이다.

신동원(과학사상 편집주간, '조선사람의 생로병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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