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봉급자만 덤터기 쓰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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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부의 직장의료보험료 조정안은 형평성 문제를 도외시한, 행정편의적 발상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을 만하다.

보건복지부가 20일 입법예고한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에 따르면 앞으로는 기본급 대신 '실제 총수입' 을 기준으로 의료보험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7월부터 직장인의 절반 가까이가 최고 50%까지 보험료를 더 물게 된다.

여기에 한국노총과 직장의보 노조 등이 즉각 "언제까지 봉급생활자만 봉으로 삼으려 하느냐" 며 반발하고 나섰다.

현재 전국 1백40개 직장의보조합에 속한 직장들은 급여 체계가 기본급.각종 수당 등으로 나뉘어 있어 매우 복잡하다.

소득에 따라 보험료를 거두기 위해 기준을 일원화하겠다는 의도는 일리가 있다.

또 의보(醫保)도 다른 사회보험처럼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어려운 계층을 돕는다는 취지란 점에서 대기업.고소득자의 부담을 늘린다는 원칙 자체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복지부의 이번 개편안은 봉급생활자의 감정적 반발 차원을 넘어 형평성과 시장경제원리 측면에서 몇가지 심각한 논리적 맹점을 안고 있다.

먼저, 정부가 내세우는 '동일 부담' 원칙이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지역 의보 가입자)간에 공평하게 적용되느냐는 문제다.

현재 자영업자의 소득은 실제 수입의 약 30%밖에 드러나지 않는 반면 봉급생활자는 유리알처럼 투명하다.

이런 판에 무슨 근거로 '동일 부담' 원칙을 들고 나오는지 이해가 안간다.

형평성 시비는 봉급생활자 사이에도 있다.

정부는 고소득자의 부담이 일시에 급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증가율이 50%를 넘는 부분은 연말까지 유예 혜택을 주기로 했다.

이는 결국 부담이 30~49% 늘어나는 중간소득 계층만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결과를 낳는다.

여기에다 내년부터 직장과 공무원.교원의보가 통합되고, 2002년부터는 적자 투성이인 지역의보까지 통합될 경우 봉급생활자의 부담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어 두고두고 문제가 된다.

또 정부의 이런 방식은 자금을 효율적으로 관리.운영해 흑자가 난 직장의보조합은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는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현상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간 형평성 시비는 비단 이번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총리실 산하 자영업자 소득파악위는 세제상 불합리를 개선하기 위해 과세특례제도의 폐지 또는 전면 개편을 건의했지만 정부.정치권은 총선을 의식, 이를 미뤘다.

이렇듯 불합리한 기준을 고치기는커녕 의보 정책에까지 그대로 확대 적용하겠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발상이다.

게다가 의보 정책에 드는 부담은 정부도 분담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감안, 현행 의보료 부과체계를 전면 재점검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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