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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이소룡·성룡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점 고민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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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비는 혹독한 다이어트를 했다. 체지방을 거의 다 빼고 근육을 만들었다. 그는 “오징어가 말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살을 집어보면 닭의 껍질을 만지는 것 같았다”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연합뉴스]

인정한다. 1년 전 가수 비(27·본명 정지훈)가 ‘스피드 레이서’의 조연으로 할리우드에 도전장을 냈을 때, 솔직히 무모해 보였다. “아시아 배우가, 그것도 가수 출신 연기자가 할리우드에서 하면 얼마나 하겠어”라는 다분히 부정적인 시선이 있었다. 26일 개봉하는 ‘닌자 어쌔신’은 그런 부정론과 비관론에 비가, 아니 ‘Rain’(비의 영문 이름)이 거센 반격을 한 작품이다. 무엇보다 한 가지가 확실하다. 비가 할리우드 첫 주연작에서 지독한 성실함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제 몫을 해냈다는 점이다.

‘닌자 어쌔신’은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 감독과 ‘다이하드’‘리썰 웨펀’의 명프로듀서 조엘 실버가 제작하고, ‘브이 포 벤데타’의 제임스 맥티그가 연출했다. 비는 어렸을 때 닌자 집단에 맡겨져 살인병기로 자라지만 무자비한 살육에 고민하다가 결국 그가 소속된 집단에 등을 돌리는 주인공 ‘라이조’를 맡았다. 10일 오전 그를 만났다.

-할리우드 첫 주연작이다. 잔인한 폭력물이어서 부담은 없었나.

“잔인하지 않았으면 다른 무술영화와 차별화가 안 됐을 거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이후 이런 무술영화는 없었다고 감히 자부한다. 기존 무술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캐릭터와 액션을 만들어보자는 게 워쇼스키 형제의 야심이었다. 이소룡·성룡 등 액션스타들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점이 뭘까 함께 고민했다. 장신(185㎝)을 이용하고, 근육을 키우고, 쇠사슬·표창 같은 색다른 무기를 써보기로 했다. 촬영 8개월 동안 안 배운 무술이 없다. 태권도는 물론 복싱·가라테·쿵후·우슈·야마카시·덤블링 등을 하나씩 익히면서 ‘살인기계’ 라이조를 만들어갔다. 아크로바틱도 배웠다. 이젠 어디를 때려야 상대가 숨을 쉬지 못하고 가장 아픈지를 안다. 영화 완성본을 보니 액션이 너무 멋져서 저 배우가 나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웃음)

-갑자기 웬 닌자냐, 캐릭터가 평면적이다 등의 지적이 있다.

“워쇼스키 형제는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봤을 때 느낌이 계속 달라지는 인물을 만들자’‘웬만하면 풀샷을 잡지 않고 클로즈업 위주로 가겠다’고 했다. 거칠고 현란한 액션장면에서도 얼굴에 반항심과 분노를 계속 표현하라고 요구했다. 표정 연기를 가르쳐주는 전문코치도 붙었다. 내면연기를 많이 못 보여줬다는 지적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하지만 ‘닌자 어쌔신’은 현란한 액션을 즐기는 오락영화다. 댄스가수의 화려한 비주얼과 춤을 즐기다 보면 노래가 아쉬워질 수 있다. 둘 다 제대로 보여주긴 쉽지 않다.”

영화 초반, 그가 못이 빼곡히 박힌 판자 위에서 물구나무를 선 상태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에겐 8개월 내내 ‘무한도전’이었던 셈이다. “처음엔 한 개도 못했다. 왜 이걸 시키느냐고 불평도 했다. 한 달 지나니 4개, 두 달 지나니 10개, 석 달 지나니 20개를 했다.”

-촬영장에서 외롭지 않았나. 주연과 조연의 차이를 느꼈나.

“모두들 잘해줘서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나이가 어리니까 뭘 잘 모른다고 물어봐도 부담이 없었다. 못 알아들은 영어는 휴대전화에 찍어놨다가 나중에 사전을 찾아봤다. 할리우드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배우들도 중요도에 따라 10개 그룹으로 나눈다. 1번이 주연이다. ‘스피드 레이서’ 땐 10번, 이번엔 1번이었다. 식사도 가장 먼저 나왔다. ‘생선 해줄 건데 후추 넣을까, 뺄까?’‘바질(허브의 일종)은 넣을까?’‘지금 배 많이 고프냐?’를 하도 물어서 나중엔 귀찮을 정도였다. 액션 장면을 찍다가 ‘아!’ 하고 소리라도 지르면 보험회사 직원·안마사·의무요원 등이 사방에서 달려왔다. 주연배우의 부상으로 일정에 차질 생기면 그게 바로 제작비 초과니까 얼마나 민감하겠는가.” (웃음)

-두 번의 할리우드 경험에서 얻은 것은.

“세계 무대는 굉장히 거친 파도와 같다. 편하게 있으려 하면, 또 하고 싶은 것만 하면 금새 뒤로 밀려난다. 할리우드는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곳이다. 한국의 비, 아시아의 비로는 먹히지 않는다. 누군가 중간에서 할리우드와 비가 만날 수 있도록 작업을 해줘야 한다.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가, 명제작자 조엘 실버가 그걸 해준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닌자 어쌔신’으로 ‘Rain’이 세계시장에 각인될 테니 그것으로 일단 만족이다. 흥행은 그 다음이다. 전 아직 어리다. 어린 게 무기다.”(웃음)

기선민 기자
▶ [화보보기] '닌자 어쌔신' 비, 기자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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