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혹독한 다이어트를 했다. 체지방을 거의 다 빼고 근육을 만들었다. 그는 “오징어가 말라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고, 살을 집어보면 닭의 껍질을 만지는 것 같았다”고 촬영 당시를 떠올렸다. [연합뉴스]
‘닌자 어쌔신’은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 감독과 ‘다이하드’‘리썰 웨펀’의 명프로듀서 조엘 실버가 제작하고, ‘브이 포 벤데타’의 제임스 맥티그가 연출했다. 비는 어렸을 때 닌자 집단에 맡겨져 살인병기로 자라지만 무자비한 살육에 고민하다가 결국 그가 소속된 집단에 등을 돌리는 주인공 ‘라이조’를 맡았다. 10일 오전 그를 만났다.
-할리우드 첫 주연작이다. 잔인한 폭력물이어서 부담은 없었나.
“잔인하지 않았으면 다른 무술영화와 차별화가 안 됐을 거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 빌’ 이후 이런 무술영화는 없었다고 감히 자부한다. 기존 무술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전혀 다른 캐릭터와 액션을 만들어보자는 게 워쇼스키 형제의 야심이었다. 이소룡·성룡 등 액션스타들과 다르게 보일 수 있는 점이 뭘까 함께 고민했다. 장신(185㎝)을 이용하고, 근육을 키우고, 쇠사슬·표창 같은 색다른 무기를 써보기로 했다. 촬영 8개월 동안 안 배운 무술이 없다. 태권도는 물론 복싱·가라테·쿵후·우슈·야마카시·덤블링 등을 하나씩 익히면서 ‘살인기계’ 라이조를 만들어갔다. 아크로바틱도 배웠다. 이젠 어디를 때려야 상대가 숨을 쉬지 못하고 가장 아픈지를 안다. 영화 완성본을 보니 액션이 너무 멋져서 저 배우가 나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웃음)
-갑자기 웬 닌자냐, 캐릭터가 평면적이다 등의 지적이 있다.
“워쇼스키 형제는 ‘한 번 보고 두 번 보고 세 번 봤을 때 느낌이 계속 달라지는 인물을 만들자’‘웬만하면 풀샷을 잡지 않고 클로즈업 위주로 가겠다’고 했다. 거칠고 현란한 액션장면에서도 얼굴에 반항심과 분노를 계속 표현하라고 요구했다. 표정 연기를 가르쳐주는 전문코치도 붙었다. 내면연기를 많이 못 보여줬다는 지적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하지만 ‘닌자 어쌔신’은 현란한 액션을 즐기는 오락영화다. 댄스가수의 화려한 비주얼과 춤을 즐기다 보면 노래가 아쉬워질 수 있다. 둘 다 제대로 보여주긴 쉽지 않다.”
영화 초반, 그가 못이 빼곡히 박힌 판자 위에서 물구나무를 선 상태에서 팔굽혀펴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에겐 8개월 내내 ‘무한도전’이었던 셈이다. “처음엔 한 개도 못했다. 왜 이걸 시키느냐고 불평도 했다. 한 달 지나니 4개, 두 달 지나니 10개, 석 달 지나니 20개를 했다.”
-촬영장에서 외롭지 않았나. 주연과 조연의 차이를 느꼈나.
“모두들 잘해줘서 외로움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나이가 어리니까 뭘 잘 모른다고 물어봐도 부담이 없었다. 못 알아들은 영어는 휴대전화에 찍어놨다가 나중에 사전을 찾아봤다. 할리우드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서 배우들도 중요도에 따라 10개 그룹으로 나눈다. 1번이 주연이다. ‘스피드 레이서’ 땐 10번, 이번엔 1번이었다. 식사도 가장 먼저 나왔다. ‘생선 해줄 건데 후추 넣을까, 뺄까?’‘바질(허브의 일종)은 넣을까?’‘지금 배 많이 고프냐?’를 하도 물어서 나중엔 귀찮을 정도였다. 액션 장면을 찍다가 ‘아!’ 하고 소리라도 지르면 보험회사 직원·안마사·의무요원 등이 사방에서 달려왔다. 주연배우의 부상으로 일정에 차질 생기면 그게 바로 제작비 초과니까 얼마나 민감하겠는가.” (웃음)
-두 번의 할리우드 경험에서 얻은 것은.
“세계 무대는 굉장히 거친 파도와 같다. 편하게 있으려 하면, 또 하고 싶은 것만 하면 금새 뒤로 밀려난다. 할리우드는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성공할 수 없는 곳이다. 한국의 비, 아시아의 비로는 먹히지 않는다. 누군가 중간에서 할리우드와 비가 만날 수 있도록 작업을 해줘야 한다. ‘매트릭스’의 워쇼스키 형제가, 명제작자 조엘 실버가 그걸 해준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닌자 어쌔신’으로 ‘Rain’이 세계시장에 각인될 테니 그것으로 일단 만족이다. 흥행은 그 다음이다. 전 아직 어리다. 어린 게 무기다.”(웃음)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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