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 인터뷰] "내 주장만 옳다 식의 정치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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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종의 살림살이를 총괄하는 총무원장 법장 스님. 그는 "대중이 안 된다고 하면 때론 따르는 것도 수행자의 도리"라고 함축으로 말했다. 신동연 기자

고속철도 천성산 터널을 둘러싼 지율 스님의 단식 강행으로 불거진 환경 문제 갈등, 정부여당의 사립학교법(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범종교계의 반대 여론, 추진 4년째 제자리걸음인 달라이 라마 방한 추진…. 사회적 현안에 불교를 포함한 종교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상황이다. 이런 사안을 놓고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法長.64) 스님이 입을 열었다.

지난해 2월 취임 이후 일간지와의 첫 단독 인터뷰 자리를 마련한 법장 스님은 개신교.가톨릭을 포함한 7개 종교 협의체인 종교지도자협의회(종지협) 공동대표 의장이기도 하다. 지난 9일 서울 조계사 옆 원장스님 집무실에서 진행된 인터뷰에는 총무원의 중추인 여연 스님(기획실장), 지원 스님(사회부장), 심경 스님(사서실장)이 배석했다.

인터뷰에서 법장 스님은 '대립의 양단은 본디 둘 아닌 하나'라는 불이(不二)론과 '모든 게 서로 얽혀 있다'는 동체대비(同體大悲)란 어휘를 즐겨 반복했다. 슬기로운 해결책으로 갈등 최소화를 바라는 자세가 역력했지만, 완곡하면서도 둥글둥글한 화법 속에 사안의 본질을 비켜가지는 않았다. 스님은 이 자리에서 사회적 논란이 일고 있는 보안법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웰빙 바람을 탄 서구의 불교 붐을 수용하기 위해 미국에 26번째 교구 설치 등 불교진흥안도 제시했다.

-총무원장 취임 첫 발언이 '원융 살림으로 종단을 이끌겠다'는 것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현안에 따라 때론 소신 발언도 환영하겠습니다. 먼저 사학법 개정문제입니다.

"사학법 개정은 일부 사학의 파행 때문입니다. 일테면 4년제 대학의 40%와 전문대의 50%가 학교 경영권을 대물림하는 것도 세상이 다 압니다. 이 때문에 종지협을 중심으로 종교계가 반대 성명서를 낸 바 있지만, 무조건 반대는 아닙니다. 어떻게 하면 사학 자율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공익성을 만족시킬 것인가 하는 쪽에서 균형을 잡아 처리돼야 합니다 교직원 임면권, 예산 편성권 등 재단이 가져야 할 최소 장치는 꼭 필요합니다."

-정부 여당은 올 정기국회 처리를 목표로 하되 일부 조항은 수용 의사를 밝힌 바 있습니다.

"좋아요. 자 큰 원칙을 재확인합시다. 사학에 재산을 바친 분들이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는 구조는 막자, 그러나 그분들의 명분마저 빼앗는 방향은 안 된다, 이겁니다. 얼마 전 국회 교육위 소속의 의원에게도 '학교를 빼앗으려 들어서는 안 된다'고 일침을 놓았었지요. 재단 이사회를 유야무야 식으로 축소시킨다면 누가 학교를 운영하려 할까요? 그렇게 되면 상황이 어려워질 수도 있죠."(현재 국내 사립학교는 1500여개 재단에 2000개 학교가 있으며, 이들은 4년제 대학의 78%, 고교의 58%에 해당한다.)

-불교계의 오랜 현안인 달라이 라마 스님 초청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제가 지난해 초 원장에 취임한 뒤 첫 내방객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리빈(李濱) 주한 중국대사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달라이 라마 스님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지만, 암묵적으로 서로 간에 짚이는 건 있었겠지요."

-원장스님은 2001년부터 초청 작업에 관심이 많았던 걸로 압니다.

"그렇습니다. 개신교 강원용 목사님, 김수환 추기경님과 함께 방한 추진을 시작했지요. 제 소견을 말씀드리자면 이 사안과 관련해 정부는 정부대로, 중국은 중국대로 정치적인 해석은 정말로 금물이라는 점입니다. 노벨평화상을 받은 달라이 라마는 존경받는 수행자이자, 국가 잃은 지도자입니다. 그분을 한국땅에 초청하는 것은 요즘 어려운 국내 상황 속의 국민에게 따뜻한 감동을 나누는 계기가 되겠지요."

-항간에서는 이 사안을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관련짓습니다. 달라이 라마 초청도 중국 눈치를 보듯 정부의 중국에 대한 저자세 외교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정치적 해석이죠. 종교는 종교이고, 외교는 외교일 뿐입니다."

-잠시 가라앉았지만, 천성산(경남 양산) 터널 문제를 놓고 지율 스님의 단식 파동이 나왔고, 결국 지난달 말 청와대가 개입했습니다. 지금은 '공사 잠정 중단, 법원 판결 승복' 쪽으로 가닥이 잡혔는데요. 지난해 서울외곽순환도로 북한산 관통도로 공사 때도 환경문제가 불거져 나왔습니다.

"산업화 시기 당장 먹고 사는 것에 매달렸지만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새만금.북한산 터널 사안 등에 불교가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환경문제는 자연과 인간, 사물과 뭇 생명이 얽혀있는 하나라는 연기(緣起)사상의 현대적 재확인이기도 합니다."

-천성산 도롱뇽의 친구를 자처하는 지율 스님의 단식은 이번이 세번째였고, 불교계에서도 찬반 여론이 엇갈렸습니다만….

"단식이 환경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이끌어낸 것이 분명합니다. 단 지율 스님의 극단적 선택은 저로서는 좀 곤혹스러웠습니다. 지율 스님의 은사 스님은 물론 환경연대 등도 반대했거든요. 대중이 반대하면 짐짓 따라주는 것도 비구들의 도리 아닙니까? 어쨌거나 환경문제는 종단의 최대 관심사입니다. 단 앞으로는 환경 갈등을 해소.치유하는 쪽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려 합니다."

-원장 스님의 화법(話法)이 둥글둥글하면서도 던질 말은 적절히 던지시는 쪽입니다. 참여정부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논란 속의 보안법 문제는 어떤지요.

"정치적인 얘기는 삼가렵니다. 단 남을 배제하는 정치, 내 주장만 옳다는 정치는 안 된다는 원칙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보안법 문제 역시 그렇습니다. 저는 국민의 법 감정 측면을 중시하는데, 폐지는 성급하다는 게 제 소견입니다. 거기까지만 말합니다."

-요즘 서구의 불교에 대한 관심은 대단합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 그쪽의 엘리트들이 불교를 목말라합니다.

"선과 패션, 선과 웰빙 등 불교는 이제 모든 뉴에이지 문화의 단골 메뉴입니다. 크게 보아 문명사적 변환의 국면이죠. 국내 사찰 수련회만도 그래요. 일반인은 물론 수녀님.목사님들로 가득합니다. 이제 불교는 최고의 안녕을 주는 대안 사상으로 등장했습니다. 여러 가지를 준비 중입니다. 국내 25개 조계종 교구 외에 미국 내 첫 교구를 준비 중입니다. 첫 해외교구이지요. 잘 만든 선(禪) 체험 센터도 공주 마곡사에 곧 들어섭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원장스님은 생명나눔실천본부 일 등 사회활동도 많이 하십니다. 건강 유지가 관심인데, 황토가루를 장복한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오행사상에 따르면 사람의 몸은 흙(土)입니다. 비유하건대 황토가루 복용은 산성화된 논밭에 객토작업을 해주는 것이지요. 제 경우 지관(地官) 한 분으로부터 황토를 공급받는데 분석을 해보니 원적외선 방사율이 98%랍니다. 그걸 먹은 뒤 해외여행 물갈이할 때 오는 두드러기 현상이 싹 가셨어요. 단 따라하시지는 마세요."

조우석 기자 <wowow@joongang.co.kr>
사진=신동연 기자 <sdy11@joongang.co.kr>

*** 법장 스님은 …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인 법장 스님은 전형적인 복코와 부드러운 선의 얼굴 때문에 친근한 느낌부터 안겨준다. 그 때문일 것이다. 그가 지난해 2월 총무원장에 선출됐을 때 일부 우려가 없지 않았다.

1980년 이후 중앙종회 의원을 지내고 총무원 사회부장 등을 역임해 종무행정에도 두루 밝다지만, 불교 중앙정치의 한복판에서 어떤 리더십을 발휘할 것인지가 궁금했던 것이다.

지난 6월 총무원장의 종단 운영 방향을 문제 삼아 중앙종회(조계종의 입법기구) 일부 스님이 시정요구 성명을 낸 것도 중앙정치의 어려움을 보여주며, 그것을 풀어가는 것이 법장 스님의 과제다. 일반적으로 법장 스님의 성격은 자상하고 꼼꼼한 편. "스님은 모든 것을 열어놓고 있어야 한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는 게 5년간 수덕사에서 법장 스님을 모셨던 주경 스님의 말이다.

스님은 60년 수덕사에서 원담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지금까지 생명나눔실천회.한국유권자운동연합.동국학원 재단.대한불교청년회 등 교계 안팎에서 사회활동을 벌이고 있다. 총무원장의 임기는 4년으로 2007년 2월까지 재임한다.

*** 조계종 총무원은

불교 조계종의 살림을 총괄하는 핵심 기관이자 불교계의 최고 행정기관이다. 조계종의 구조는 국가기관과 비슷해 입법부의 역할을 하는 대의기관인 중앙종회가 있고, 사법부 역할은 호계원이 맡는다면 행정부의 역할을 맡는 것이 총무원이다.

총무원의 위로는 종정(법전 스님)과 원로회의가 있지만, 25개 교구를 실제적으로 관리하는 권한은 총무원이 갖고 있다.

사찰 관리 및 주지 임명, 종단 재산관리, 종단 종책의 기획조정 업무 등이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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