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연대 '부적격' 명단발표 왜 미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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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시민단체의 낙선운동이 멈칫거리고 있다.

시민 불복종운동까지 내세우던 시민단체가 갑자기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공정성과 불법성 시비 때문이다.

20일 공천반대 인사 명단을 공개키로 했던 총선시민연대는 발표 일자를 나흘 늦췄다.

누가 봐도 공정한 선정기준을 만드느라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총선연대 관계자는 "돌다리도 두세번 두드려 보고 건너야 한다" 고 말한다.

만약 발표 명단 가운데 사실관계에서 오류가 발견되면 공신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게 된다.

이 경우 자칫 낙선운동 자체가 좌초할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그래서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불복종운동' 을 내세운 경실련도 지도층 내부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선관위가 불법으로 판정한 낙선운동의 이행여부 때문이다.

"어차피 불복종운동을 선언한 바에야 낙선운동도 감행해야 한다" 는 의견이 강하다.

반면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수 있으므로 정보공개 수준을 유지하자" 는 주장도 만만찮다.

우선 총선연대는 50~1백명으로 예정된 대상자 선정에 진통을 겪고 있다.

총선연대 김기식(金起式)사무처장은 "20여명이 1주일이 넘도록 철야작업을 하고 있지만 막판 쏟아진 의원들의 소명자료와 각종 제보를 확인하느라 물리적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 이라고 말했다.

철저한 검증 때문에 명단공개가 불가피하게 연기됐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사정은 그렇게 간단한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명단이 공개될 경우 발생할 '메가톤급' 파장 때문에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파장을 줄이기 위해 선정기준의 객관성과 공정성이 담보돼야 하는데 부패연루.의정활동 등 일곱가지 기준에 얼마만큼의 가중치를 둘 것인가도 쉽지 않다.

18일 열린 공동상임대표.상임집행위원장단 연석회의와 정책자문교수단의 검토작업을 잇따라 거치면서도 가중치 문제를 놓고 갑론을박을 거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커트라인' 에 걸린 의원들의 처리문제도 어렵다.

일각에서는 "확실한 의원만 뽑는다며 모호한 의원들을 빼다보면 속빈 강정에 그치는 게 아니냐" 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정치권과 유착 의혹이 갑자기 불거지는 점도 곤혹스런 대목이다.

발표 날짜가 새천년 민주당 창당대회 날짜와 겹쳐 '신당에 재 뿌리지 말자' 는 취지에 부랴부랴 시기를 늦추게 됐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金사무처장은 "연기 요청을 받은 적도 없고 전혀 고려 대상도 못된다" 고 말하고 있다.

경실련은 선관위의 위법 판정이 내려진 지난 17일 오후 전격 소집된 상임집행위원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쟁이 벌어졌다.

2시간 동안 계속된 회의에서 일단 불복종운동에는 의견일치를 보았지만 낙선운동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1백64명이라는 '공천부적격' 후보의 명단을 공개한 이상 추가로 정보를 공개하면 '표적' 으로 비춰져 객관성과 공정성을 잃을 수 있다" 는 주장이 내부에서 제기된 것이다.

여기에는 불법 시비가 뻔한 총선연대의 운동방식과 차별화하자는 생각도 깔려 있다.

총선연대나 경실련 모두 일단 '호랑이 등에 올라탄' 형국이어서 이제 멈추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여론의 지지 못지 않게 객관성과 불법성 시비를 놓고 비판적인 시각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잘못하면 시민운동이 왜곡되지 않을까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문경란.박신홍.하재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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