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티즌 파워] (하) 네티즌 문화 정립할때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6면

"아홉살 여자애가 떨어지면서 즉사했대요. 두피도 벗겨졌다는데 누구 목격자 없나요. "

지난해 10월초, 한 PC통신에 놀이기구를 타던 어린이가 떨어져 숨졌다는 글이 띄워졌다.

첫 통신문은 '~하다더라' 투의 소문을 전달하는 내용에 불과했다.

조회건수가 하루 5백여회를 육박하면서 게시판에 사고를 기정사실화하는 글이 올랐다.

이윽고 사고 당시 아이 모습이라는 합성사진까지 등장했다.

놀이공원측이 "사실 무근" 이라고 해명했지만 "은폐하지 마라" 는 식의 비난만 빗발쳤다.

통신망을 떠돌던 이 악성루머는 한 달 뒤 잠잠해졌지만 이 놀이공원을 찾는 손님은 20% 이상 줄었다.

급성장한 네티즌의 파워가 사이버 민주주의를 한층 향상시킨 반면 인권침해.유언비어 유포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11월까지 인터넷.PC통신 등에 게재된 불건전정보 건수만 1만8천여건에 이른다.

◇ 기능.제도 보완〓PC통신 유니텔은 최근 대화방에 특정인의 대화내용을 컴퓨터 화면에 나타나지 않게 하는 '귀마개' 기능을 추가했다.

나우누리는 다수의 네티즌으로부터 전자우편 수신을 거부당한 가입자의 '블랙 리스트' 를 만들어 특별 관리하고 있다.

기능적 장치 외에 사이버 폭력에 대해 운영자도 연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도 높다.

실제로 1997년 일본에선 도쿄(東京)지법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내용임을 알고도 삭제 의무를 지키지 않았다' 며 PC통신 운영회사 '니프티' 에 대해 배상책임을 지게 했다.

정보통신부는 사이버 스토킹 등 인터넷상의 모든 범죄 행위를 포괄하는 '정보화 역기능 방지 특별법' 을 지난해 5월부터 추진 중이다.

◇ 네티즌 자정 노력〓PC통신 하이텔의 '하드웨어 동호회' 는 네티즌 사이에 사이버 경찰관으로 통한다.

컴퓨터망에서 전자부품과 관련된 유언비어를 걸러내는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

동호회 대표 鄭호성(31)씨는 "처음에는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동호회가 출발했지만 이젠 악성 발언을 하는 네티즌을 잡아내는 데 더욱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고 말했다.

인터넷 사이트를 제작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웹마스터들의 정화 운동도 일어나고 있다.

'한국 웹 마스터 클럽' 은 지난해 5월 윤리 가이드를 제정해 음란.퇴폐 콘텐츠 퇴출에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윤리가이드 정식회원으로 1천여명이 가입할 만큼 참여 열기가 높다.

◇ 전문가 의견〓한국정보보호센터 박광진(朴光進)선임연구원은 "역기능 피해 신고센터를 신설해 사례를 접수한 뒤 정도가 심하면 수사기관의 협조를 받을 계획" 이라며 "영화등급처럼 인터넷 내용 등급제를 시행해야 한다" 고 밝혔다.

연세대 신문방송학과 강상현(姜尙炫)교수는 "사이버 테러가 발생하는 것은 아직 이성적 판단이 미흡한 10대들이 인터넷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 이라고 진단하고 "저질문화에 대항하는 역(逆)네티즌 그룹을 조직화하는 것만이 네티즌의 파워를 지속시킬 수 있다" 고 말했다.

사회부 사이버팀〓최민우.우상균.이가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