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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금융 사기꾼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39호 30면

피터스 그룹의 창업자이자 전 회장인 토머스 피터스는 ‘범죄’를 저지르던 와중에 여비서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비서의 열쇠 고리에 달린 작은 기계가 그들의 대화를 녹음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는 비서에게 “일을 마무리할 계획이 있다”며 “최악의 경우라도 자네는 감옥에 가지 않는다. 내가 간다”고 말했다.

결국 최악의 경우가 닥쳤다. 피터스는 35억 달러의 폰지 사기 혐의로 기소돼 미네소타주 세인트폴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자신은 사기 행위를 몰랐으며 비서와 다른 직원들이 함께 투자한 헤지펀드를 상대로 사기를 쳤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녹음은 또 있다. “이건 엄청 X같은 사기”라는 피터스의 말이 지난주 배심원들 앞에서 공개됐다. 지난해 12월 월가를 뒤흔든 버나드 메이도프의 대형 금융사기 사건이 터지기 석 달 전에 녹음된 것이다.

메이도프는 피라미드 방식으로 모은 돈이 500억 달러라고 말했다. 검찰은 메이도프의 폰지 사기로 인한 투자자들의 실제 손실은 130억 달러라고 밝혔다.

손해가 겨우 130억 달러라고? 처음에 메이도프가 500억 달러라고 할 때부터 얼마나 큰돈인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피해금액이 줄었더라도 메이도프가 피터스보다 더 큰 사기를 친 것은 틀림없다. 수법은 비슷한 점이 있더라도 말이다.

법정에서 피터스 그룹 관계자들의 말은 다르다. 그들은 헤지펀드에서 받은 돈으로 TV와 DVD플레이어 유통에 투자했고 서킷시티를 거쳐 샘스클럽과 코스코에 판매해 엄청난 이익을 남겼다고 주장한다. 알다시피 서킷시티는 지난해 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결국 이들이 투자했다는 TV는 실체가 없고 당연히 이익도 없다. 일부 투자자들이 이익금 명목으로 받은 돈은 다른 투자자들이 낸 돈이었다. 전형적인 폰지 사기 수법이다.

피터스 사기 사건은 가공의 전자제품에 대한 배송표를 만들어냈다. 일부 투자자들이 실제 제품을 보여달라고 하자 창고 문이 닫혀 있다는 등 온갖 핑계를 댔다. 진짜 전자제품은 피터스의 말을 녹음한 비서의 열쇠 고리에 달린 녹음기뿐이었는지 모른다. 녹음을 들어보면 비서는 더 이상 제품을 판매한 척하지 못하겠다고 하소연한다. 그러자 피터스는 애처롭다는 듯 비서를 포옹하려고 한다. 비서는 겁을 먹고 뒷걸음질 친다. 영화에서나 자주 보던 장면이다.

피터스는 앨런 스탠퍼드에 비하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본인은 혐의를 부인하지만 스탠퍼드는 올 초 70억 달러의 폰지 사기 혐의로 체포됐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이런 일도 있다. 정부가 2000만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갤런 헤지펀드는 내부자 거래 사건에 연루됐다.

메이도프의 회계사였던 데이비드 프리링은 최근 연방법원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회계 장부에 서명했다고 시인했다. 그는 메이도프를 믿었기 때문에 폰지 사기는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 결과 프리링은 최대 112년 징역형을 기다리고 있다.

프리링이 회계사로서 한 역할이 있다면 메이도프를 위해 가짜 서류로 세금 환급을 신청한 정도다. 그러면서 매달 1만2000~1만4500달러의 회계사 보수를 챙겨갔다. 프리링은 증권거래위원회(SEC)에 310만 달러를 물어내는 데 동의했다. 그가 얻은 이익금의 전부라고 한다. 사람이 쩨쩨하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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