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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2000선거] 대만(上)-쑹추위 무소속 돌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대만이 심상찮다. 총통선거(3월 18일)를 앞두고 나라 전체가 들쑤셔놓은 벌집 같다. 반세기를 유지해온 국민당 중심의 정치체제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고, 경제도 출렁이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저마다 '양안 전략 '을 내놓는 바람에 유권자들은 대만과 중국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커다란 고민에 빠져 있다. 기로에 선 대만의 앞날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지지율 다툼은 이제 끝났다. 무소속의 쑹추위(宋楚瑜.58.전 대만성장)후보가 6일 타이베이(臺北)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실 앞에 도착한 뒤 외친 말이다.

사실상 '대선 승리선언' 을 한 셈이다. 宋후보 앞에는 모두 1백58만3천6백19장의 '롄수수(連署書.주민 추천서)' 가 담긴 1천5백여개의 종이상자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대만 선거법에 따르면 정당 후보만이 아무 조건없이 총통 후보에 등록할 수 있다. 宋후보처럼 무소속인 경우 최소한 22만장의 롄수수를 제출해야 한다. 그는 자격요구선의 8배 가까운 롄수수가 담긴 상자를 트럭 20여대에 나눠 싣고 선관위를 방문해 후보등록을 마쳤다.

96년 대선 당시 롄수수와 실제 득표수의 비율은 롄수수 1장에 3표였다. 이를 그대로 적용할 경우 宋후보는 실제 선거에서 적어도 4백80만표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대만 전체 유권자가 약 1천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거의 과반수에 육박하는 수치다. '승리는 이미 떼논 당상' 이란 분위기가 宋후보 선거캠프에 팽배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국민당은 잔뜩 긴장하고 있다. 최근 宋후보에 대한 공격을 거듭했음에도 宋후보의 지지율이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국민당은 최근 들어 宋후보가 ▶아들 명의로 1억4천만 신대폐(新臺幣.약 56억원)를 운용하는 등 모두 10억 신대폐의 불법자금을 운영해왔고▶대만성장 재임 당시 횡령 등 불법행위를 저질렀음을 폭로했다.

심지어 '동성애 연루설' 까지 흘렸다. 청렴으로 국민당과의 차별성을 꾀하던 宋후보로선 타격이 컸다. 폭로 이후 중국시보의 여론조사 결과 宋후보의 인기도가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49)후보에 밀리는 기현상이 빚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宋후보는 1백60만장의 롄수수를 업고 늠름하게 부활했다. 결국 국민당은 '극약 처방' 을 내놓았다. 롄수수가 1백만장을 넘어섰다는 정보를 입수한 3일 국민당의 롄잔(連戰.64)후보는 ▶정당의 영리사업을 금지하고▶국민당의 재산을 신탁공사에 위탁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당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連후보와 함께 부총통 후보로 나선 샤오완창(蕭萬長)행정원장이 하루만에 "정당법 개정안을 2월말까지 입법회에 제출하겠다" 고 맞장구쳤다.

국민당내 당투자사업관리위원회측도 6일 "싱가포르.홍콩.콸라룸푸르 등에 흩어져 있는 총 60억 신대폐(약 2천4백억원)에 이르는 해외재산을 즉시 매각하겠다" 고 나섰다.

요컨대 흑색정치와는 이젠 담을 쌓겠다는 모습을 보여주는 한편 대선패배에 대비한 재산지키기 등 일석이조의 전략이다.

宋후보의 높은 당선 가능성과 국민당의 변신은 대선 이후 대만이 결코 그 이전의 대만과 같을 수 없음을 말해준다. 누가 승리하든 금권정치로 점철돼온 대만 정치가 바뀔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경제도 파도를 타기 시작했다. 그동안 국민당과 손잡고 사업을 벌여왔던 대만 기업들의 주가가 추락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나스닥 주가 폭락의 영향으로 아시아 주가가 곤두박질친 5일에도 대만의 자취안(加權)2지수만 1.7% 올랐다. 대만 경제가 오히려 '국민당' 이라는 혹을 도려내면서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증거다.

국민당내 한 재정관계자는 "대만 경제의 30% 가량이 국민당의 영향권" 이라고 털어놓았다. 정당법 개정의 파문이 경제에도 깊은 자국을 남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홍콩〓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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