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인터뷰] 민유성 산은금융지주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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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민유성(55·사진)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1년6개월 새 명함을 여러 번 바꿨다. 산업은행 총재에서, 산은 민영화법이 통과되면서 행장이 됐고, 지난달 28일 산은금융그룹 출범으로 지주사 회장이 됐다. 그 사이 금융위기를 겪었고, 세계적 투자은행(IB)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하려다 논란이 되기도 했다. 숨가쁘게 달려왔는데, 그는 이제 시작이라고 한다. 목표는 금융 수출이다. 그는 “30년 금융업 경력을 종합해 웃통 벗고 나서서 뛰어볼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금융 수출’이란 무슨 의미인가.

“산은은 국책은행으로서 지역·인프라 개발 사업 관련 금융, 설비투자 등 기업 금융을 많이 해왔고 전문성도 있다. 우리보다 성장이 더딘 아시아 국가가 발전하는 데 이런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런 금융 서비스를 수출하자는 것이다. 부수적인 효과도 크다. 예를 들어 산은이 대규모 금융 투자를 해 인도에 산업단지를 만든다면 우리 건설사, 플랜트 수출업체 등이 동반 진출할 수 있다. 단지가 완성되면 삼성·LG 등이 공장을 세워 시장을 선점할 수도 있다. 또 동남아는 국가 간 관계가 밀접하기 때문에 거점 국가의 금융사를 인수하면 주변국으로 시장을 넓힐 수 있다. 성장 동력을 국내에서만 찾으려는 것은 좁은 시각이다.”

-우리나라만 뛰는 것이 아닐 텐데.

“세계 경제성장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왔다. 아시아에 대한 투자가 계속 늘어날 것이다. 그런데 금융위기로 세계적인 금융사들이 모두 주춤하고 있다. 반면 산은은 재무적으로 매우 튼튼해 적극적인 영업이 가능하다. 또 미국·유럽 은행과 달리 한국의 은행은 아시아권에서 문화적 공감대가 있다. 우리가 이룬 기적적인 경제성장은 아시아 여러 나라가 모델로 삼고 있다.”

-금융위기 여파가 아직 남아 있다. 해외 진출에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시기는 너무 좋다. 산은은 사실상 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성공한 사모투자펀드(PEF) 역할을 해왔다. 망가진 기업을 사서 정상화시키고 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LG카드가 대표적이다. 아시아에서도 이런 수요가 생길 수밖에 없다. 여러 산업에 걸쳐 구조조정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그런 걸 볼 줄 알고, 만질 줄 안다. 더블딥(이중 침체) 우려가 있다지만 장기적으로 경제는 상승 국면으로 갈 것이다.”

-정부가 우리나라를 금융허브로 만들겠다고 노력해 왔지만, 별 성과가 없다. 해법은.

“진정한 금융허브가 되려면 우리 금융사의 해외 시장 지배력이 커져야 한다. 해외 진출을 더 많이 하고, 국제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 우리 영향력이 커져야 한국 시장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그래야 외국 금융사도 한국으로 들어올 것이다. 금융 수출과 금융 허브가 같이 가는 것이다.”

-금융허브가 되기엔 금융 인프라가 취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맞는 말이다. 홍콩은 금융 종사자의 50% 정도가 전문가다. 우리나라는 전문가 비중이 6%밖에 안 된다. 제너럴리스트나 지원 인력은 많은데 계약을 성사시키고, 구조화된 상품을 만들어내는 진짜 전문가가 적다. 규격화된 상품을 마케팅으로 파는 소매금융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소매금융만으로는 금융이 국가 성장 동력이 될 수 없다. 산은은 인력을 키워 소수 정예로 갈 것이다. 금융 산업의 핵심은 사람이다.”

- 55년간 국책은행이었던 산은이 관료적 문화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걱정도 많다.

“하나만 바꾸면 된다. 성과 평가와 보상 체계를 시장 중심으로 바꾸면 된다. 그렇게 하면 우리 직원의 딜을 대하는 생각이 지금하고는 확 바뀔 것이다. 또 내부 인력만으론 안 된다. 외부의 우수한 인재를 수혈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보상 체계의 변화가 필수적이다.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방안을 찾겠다.”

-시중은행의 대형화 경쟁이 치열하다.

“국내 은행 자산 중 해외 부문은 대부분 5% 미만이다. 또 은행들이 중복적으로 한 기업에 대출한 경우도 많다. 이런 은행이 합병을 하면 덩치는 커지지만, 위험도 한 곳에 몰린다. 외국의 주요 금융사는 작은 곳도 해외 비중이 30%가 넘는다. 사이즈만 키웠다고 해서 국제 경쟁력을 갖는 게 아니다. 위험의 집중도를 높이는 대형화는 생각해 볼 문제다.”

-그렇다면 한국 금융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금융산업을 제조업 경쟁력을 키우는 지원 기관으로 봤다.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금융산업은 그 자체로 국가 성장 동력의 한 축이 될 수 있다. 제조업에선 삼성전자·포스코·현대자동차 등 세계적 기업이 나왔지만 금융에선 하나도 없다. 그동안 국내에만 너무 안주해 있었다. 정부도 적극적으로 금융산업을 육성해야 한다. 선진국일수록 서비스업의 비중이 크다.”

-국내 시장은 포화 상태인가.

“아직도 성장할 여지가 많다. 신용도가 높은 고객에 대해선 은행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레드오션이다. 그러나 영세 서민층, 영세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서비스는 취약하다. 대부업에서 연 30~40% 이자로 돈을 빌린다. 우리 계산으로는 연 20~25%의 이자만 받아도 서민금융시장에서도 충분히 사업성이 있다.”

-한국의 은행장이 너무 자주 바뀐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길게 하느냐, 짧게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재직 기간 중 조직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정책금융공사와의 관계는.

“산은의 정책 금융 기능이 정책금융공사로 분리됐다.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산은은 정책금융공사가 독립적인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적극 공조할 것이다. 아직 산은은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금융사이기 때문에 국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우리에게도 중요하다.”

-GM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GM이 GM대우를 인수한 2002년 GM대우의 부채비율은 69%였다. 올해 6월 말 이 회사의 부채비율은 912%다. 2대 주주이자 최대 채권은행으로서 산은이 GM에 경영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하다. 또 GM이 현지 생산 전략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에 아시아에선 중국·인도가 생산 거점이 될 수밖에 없다. GM대우의 생산량(현재 GM 전체의 28%)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적어도 산은 자금을 쓰는 5년간은 GM대우의 생산 비중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해 달라는 것이다. 무리한 요구가 아니다. 차량 개발에 대한 지적소유권(라이선스)을 GM대우가 공유하게 해 달라는 요구도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지난해 GM은 GM대우 매출의 7%를 연구개발비로 가져갔다.”

-GM은 산은이 GM대우 지원에 인색하다며 불만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GM대우에 26억 달러를 지원했다. 자본금으로 14억 달러, 대출로 12억 달러다. 반면 GM은 4억 달러로 GM대우를 인수했고, 최근 유상증자 4억 달러를 하기 전까지 추가적인 투자는 없었다. 우리가 결코 적게 해준 게 아니다. 산은은 GM대우가 장기적으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지원을 계속할 것이다.”

남윤호 금융증권데스크, 김영훈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아깝다…”
리먼 손 안에 들어왔었는데 미국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민유성 산은금융지주 회장은 지난해 이맘때 논란이 됐던 리먼브러더스 인수 협상의 속사정도 공개했다. 그는 “손안에 들어 온 기회를 잡지 못해 아깝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는 “지금 아시아 진출이 목표인데 지난해 리먼브러더스를 인수했다면 지금쯤 미국 시장에서 뛰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왜 그렇게 아까운가.

“세계적 투자은행(IB)을 선진적인 금융사 정도로 보는데, 핵심은 그게 아니다. 리먼과 같은 IB는 ‘인포메이션 아비트러지 채널(정보 격차를 통해 수익을 내는 곳)’이다. 세계 각국에 우수한 조직이 있기 때문에 모든 정보가 총집결된다. 정보가 남보다 한 시간만 앞서도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정확도가 높으면 결정이 바뀐다.”

-협상은 어떻게 진행됐나.

“리먼이 어려운 상태였기 때문에 우리가 유리한 위치에서 협상을 했다. 미국 정부도 우리가 인수하는 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부실 부분을 다 떼고 ‘굿 뱅크’만 인수하기로 했다. 또 발표는 그때(지난해 9월) 하되 6개월간 구조조정이 어떻게 되는지를 보고 최종 인수는 2월에 하는 조건이었다.”

-인수 가격은 얼마였나.

“우리가 제시한 가격은 주당 6.4달러다. 내심 9달러까진 올라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국내 여건상 협상을 더 이상 진행하기 어려웠다. 나는 여기저기서 야단을 맞고 있었으니…. 그러는 사이에 노무라와 바클레이스가 결국 리먼을 나눠서 인수했다. 노무라는 예전부터 해외 영업을 확대하려고 오랫동안 공을 들였으나 성과가 미미했다. 이랬던 노무라가 리먼 인수 후 1년 만에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수익을 더 많이 냈다. 바클레이스의 최고경영자(CEO)는 ‘100년 만에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말했다.”

◆민유성 회장=경기고, 서강대 경영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했다. 씨티은행·리먼브러더스·모건스탠리·살로먼스미스바니 등 외국계 금융사에서 주로 근무하며 IB 업무를 익혔다. 우리금융지주 출범 때 재무 담당 부회장을 지냈다. 지난해 6월 산업은행장이 됐고, 지난달 28일부터 산은지주 회장을 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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