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 Start in Art] "달리 아저씨 그림, 놀이동산보다 신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9면

▶ 김천임마누엘영육아원생들이 ‘살바도르 달리 탄생 100주년 특별전’을 관람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와, 시계가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내려요."

미술관에 들어선 김명인(10)군이 먼길 오느라 지쳐 반쯤 감겼던 눈을 번쩍 뜨며 소리쳤다. 5일 오후 2시30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은 귀한 손님을 맞아 나른한 늦더위에서 깨어났다.

경북 김천시 교동 김천임마누엘영육아원 어린이 38명과 교사 7명이 네시간 버스길을 달려 찾아온 곳은 '살바도르 달리 탄생 100주년 특별전' 전시장. 마침 전시회 마지막 날이라 길게 늘어선 줄 뒤에 서야 했지만 스페인이 낳은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의 작품을 만나는 기쁨에 아이들은 목소리 높여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여자 몸에 서랍을 잔뜩 달아놓은 작품이 제일 좋아요.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이건 이렇게 그려야 하고 저건 저렇게 그려야 한다고 정해주시는데 달리는 선생님 말씀을 안 들었나봐요. 저도 제 생각껏 그리고 싶은데 달리 아저씨가 좋은 본보기가 됐어요. " 달리의 콧수염이 마음에 든다는 이지숙(9)양은 미술관이 놀이동산보다 더 재미있다고 신이 났다.

김소정(11)양은 초등학교 고학년답게 의젓하게 감상을 털어놓았다. "달리는 상상력이 아주 풍부해요. 책에서 도판으로만 보다가 직접 대하니 훨씬 생생하고 힘이 넘치네요. 따라 그리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좋은 공부가 됐어요."

'문화나눔'을 자청해 김천 개구쟁이들의 서울 미술관 나들이를 이끈 기업은 KT. 문화관광부 주최, 한국메세나협의회 주관에 중앙일보.복권위원회가 후원자로 나선 '전국아동복지시설 대상 문화예술프로그램'에서 KT는 강원.경북 지역 보육원 담당이다. 먼 여행길에 아이들의 점심.저녁을 챙겨주는 일이나 말동무 역할, 즉석 사진 촬영도 KT 직원들이 도맡았다. 김상춘 KT 사회공헌 담당 상무는 "문화예술 체험은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이뤄져야 하는 중요한 교육 분야"라며 "이런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돕는 일에 더 많은 기업이 힘을 보태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날 육아원생들과 어울려 미술관을 돌아본 유성숙(37) 생활지도원은 "아이들에게 진실로 간절했던 것이 의식주보다 이처럼 감동을 주는 문화예술 교육이었음을 오늘 절감했다"고 말했다.

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sski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