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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커스] 서울대가 뭐길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본격적인 입시의 계절이 돌아왔다. 매년 이맘 때면 온 나라를 후끈하게 달아오르게 하는 대학입시는 하나의 축제라기보다 매우 살벌한 전국체전경기와 같다.

스포츠대회에서 금메달이 최고의 가치이듯 이 입시에서도 '서울대 합격' 이라는 금메달이 최고의 가치다. 전국의 모든 고등학교와 입시학원은 서울대 금메달 집계 수에 목을 매고 있다.

따라서 입시는 사실 서울대를 위한 잔치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언론은 서울대 인기학과를 가기 위해서는 얼마나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는지를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원서를 접수시키는 수험생들의 주머니에 꽂혀 있는 이른바 학교배치표에서 서울대는 감히 다른 대학의 근접을 허용하지 않는 최고의 점수대에서 다른 모든 대학을 내려보고 있다.

이러한 입시는 학생이나 학부모, 나아가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오로지 서울대 지상주의를 각인시키는 장치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라는 이름은 신림동에 위치한 1백80여개의 대학 중 하나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다.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신분적 지위를 의미할 정도로 보통명사화됐다. 아예 대한민국은 '서울대 공화국' 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의 위상은 일제시대에 경성제국대학의 그것과 똑같다고 본다. 우선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일제가 민립대학의 설립운동을 탄압하고 일제지배의 충실한 하수인인 식민지 엘리트를 배출하기 위해 경성제국대학을 세운 것처럼, 해방후 미 군정도 우리의 자생적 교육자치운동이나 좌익 또는 민족주의 교육운동을 통제하기 위해 경성제국대학에서 이름만 바꾼 경성대학을 주축으로 해 몇 개의 전문대학을 합쳐 서울대학을 출범시켰던 것이다.

그리하여 일제시대에 경성제국대학이 식민지 청년들의 출세에의 관문이었던 것처럼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서울대의 열쇠마크는 모든 문을 열 수 있는 주술적 힘을 가진 것처럼 숭배됐다.

이처럼 서울대가 마치 왕조시대의 관학교육기관과 같은 위치에서 대학 서열의 정점에 서게 됨에 따라 우리의 대학사회에는 경쟁.다양성.개성이라는 자유민주주의적 가치 대신 획일적이고 신분적인 서열구조가 자리잡게 됐다.

그동안 이러한 서울대의 독점적 위상이 교육과 우리 사회에 갖는 영향에 대해 많은 지적이 있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생산적인 논의로 진전되지 못한 저변에는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 문제가 갖는 의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점이 있다고 본다.

즉 서울대의 문제에 관한 논의는 서울대라는 하나의 특정대학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국가가 대규모의 '중앙' 국립종합대학을 운영해 한 사회의 엘리트의 교육과 배출을 독점하는 시스템이 그 정당성이나 효율성의 면에서 과연 어떻게 평가돼야 하는 가라는, 대학과 교육의 근본적 시스템의 문제인 것이다.

지난 50년 동안 운영된 이러한 시스템은 매우 비효율적이고 많은 부정적인 현상을 일으켜 왔다는 것은 우리가 지겹도록 경험했다.

무엇보다 서울대의 존재는 우리의 의식구조가 왕조시대나 식민주의시대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얽어매는 뿌리다.

근래 영재를 양성한다는 과학고에서 학생들이 단지 서울대 진학을 위해 좋은 시설과 우수 교사를 버리고 집단으로 탈퇴해 학원생으로 전락하는 현실을 보고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그간 해법으로 서울대를 아예 없애자는 폐교론에서부터 분할론, 민영화론, 연구중심대학론, 국.공립통폐합론 등 많은 방안도 제시됐다. 요컨대 서울대의 독점을 근본적으로 깨뜨리는 방안이 아니고서는 어떠한 교육개혁방안도 그 실효를 거둘 수 없음은 자명하다.

최근 일본에서는 2000년도 대학종합평가에서 도쿄(東京)대가 대학재학생이 추천하고 싶은 대학의 순위에서 21위를 했다고 하며 이러한 도쿄대의 급속한 평가절하를 일본 사회가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징표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우리 사회에서 서울대의 군림과 독점이 사라지는 날은 그 언제일까.

김동훈 <국민대 법학과 교수>

◇ 필자약력〓경희대 법학사, 서울대 법학석사, 독일 쾰른대 법학박사. 현 국민대 법과대학 교수. 최근 '대학이 망해야 나라가 산다' 는 칼럼집 출간''서울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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