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대덕 밸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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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덕단지 북쪽 한국통신 건물 내에 자리한 첨단기술사업화센터. 79개의 벤처업체가 몰려있는 이곳은 'TST(Taedok Science Town)힐' 의 벤처창업 열기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장소다.

이 건물 5층 404호의 윈텍. 반도체 테스트 장비를 만드는 회사로 1년여 전에 입주했다.

사장 이동일씨는 "한국과학기술원 등 실력있는 연구소가 많아 이곳에 입주했다.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았지만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李사장은 바로 옆 401호의 카오스와 최근 공동 사업 협의를 하고 있다.

카오스는 한국과학기술원의 박종욱 교수와 그 제자들이 창업한 회사.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센서를 만들어 이미 수십만개의 주문을 받아놓은 유망 벤처업체다.

李사장은 "우리는 전자센서를 구동시킬 수 있는 좋은 기술(드라이버 기술)을 갖고 있다" 며 "카오스의 센서 기술과 결합하면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이는 바로 TST 힐 조성을 지원한 정부의 의도이기도 하다.

사업화센터 운영을 맡고 있는 한국과학기술원 김종득 교수는 "벤처는 회사가 성공할 확률이 크게 떨어지지만 우리는 50% 성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연구단지 특유의 기술력, 정부지원에 따른 벤처기업의 부담 경감, 벤처끼리의 시너지효과 등은 서울의 테헤란 밸리 등이 넘보기 힘든 요소" 라고 자랑했다.

이런 탓인지 실제 92년부터 지금까지 첨단기술사업화센터가 지원한 업체 중 5개가 자립경영하는 성과를 보았다.

부도 등으로 중도에 문을 닫은 업체 역시 5개 가량이다.

센터측은 최근 입주업체가 늘어남에 따라 회계법인과 법률사무소 등을 유치했다.

최소한 컨설팅 비용만으로 입주업체들에 서비스를 이용토록 하자는 것.

인근 과학기술원의 임창영 교수(산업디자인과)는 디자인 자문에 응하겠다고 나섰다.

기술과 별개로 상품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디자인의 수준을 올리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그러나 정부지원-민간참여라는 TST 힐의 벤처실험은 이제 초기인 만큼 넘어야 할 벽도 있다.

한 입주업체 사장은 "건물 임대비용이 조금 싸다는 것 외엔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닿는 도움은 없다" 고 말했다.

그는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벤처 지원에 나서는 바람에 연구단지에서 벤처창업이 우후죽순처럼 일고 있다" 며 지원과 선정의 내실화에 눈을 돌려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다른 입주업체의 金모 사장 또한 "1억여원이 넘는 정부의 개발자금 지원이 매력적이었다" 면서도 "그러나 지방에 위치한 까닭에 물류비용도 적지 않고 입주업체의 관리가 경직된 것은 단점" 이라고 말했다.

한 예로 국제공항인 청주공항이 45분 거리에 있지만 연결노선이 제한돼 있어 서울을 통해야만 수출입 상담을 벌일 수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스몰소프트웨어의 박기정씨는 "이 곳은 연구원 출신 창업자들이 많은데 이들은 대부분 국내시장보다 해외시장을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며 물류측면에서 다소 불리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TST 힐의 벤처 중 절반 가량이 대덕단지내 출연연구소 혹은 민간연구소 출신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TST 힐의 벤처 설립을 지원하고 있는 주요 기관들은 지난해 말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협의회를 구성했다.

한국과학기술원을 비롯해 전자통신연구원.원자력연구소.생명공학연구소의 관계자들은 각 기관 내에 자리잡고 있는 벤처기업을 돕기 위해 정보교환 등에 합의키로 한 것.

신기술창업지원단의 유춘영 실장은 "벤처기업들이 공동 브랜드를 사용할 경우 인지도를 높일 수 있을 것" 이라며 "다른 벤처업체 관리업체와도 이런 아이디어를 공유하려 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한 예로 과학기술원의 경우 올해 안에 인지도가 있는 'KAIST' 라는 브랜드를 자격 검증을 거친 벤처업체에 사용토록 할 예정이다.

과기원 박종욱 교수는 "완전경쟁을 거치는 실리콘 밸리 식만이 해법은 아니다" 면서도 "정부의 벤처지원은 국내외 관련업계로부터 자칫 불공정 경쟁이란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고 말했다.

대덕단지〓김창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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