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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경매식 공천'은 안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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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6대 총선에 대한 기대는 과거 어느 때보다 크지만 돌아가는 정치판의 품새를 보노라면 실망감이 앞선다. 우리 정치발전의 최대 걸림돌이라는 1인 보스 중심의 정치행태가 그대로 유지될 조짐이고, 득표 전략의 최우선으로 '지역' 이 강조되고 있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한 기대를 흐리게 하는 현상들은 당장 후보 공천에서 감지된다. 결국 1인 지배의 중앙당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뤄지는 각당 공천작업은 우리의 바람과 너무나 멀다.

집권 국민회의가 전국정당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민주신당은 여전히 'DJ당' 이미지를 떨쳐내지 못하고 구태를 재연하는 인상이다.

실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직계그룹인 동계동 핵심들이 조직과 자금을 챙기고 있고 영입.공천 작업도 이들에 의해 주도된다고 한다. 그러는 한편 신당은 지구당 조직책을 전국적으로 공모하겠다며 요란스레 광고를 했다.

하지만 공모에 응한 인사가 조직책을 따낸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보도다. 지난해 12월 28일 마감한 64개 지구당 조직책 공모에 2백83명이 신청했으나 우선 발표한 조직책 20여명 중 4분의3은 신청서를 내지도 않은 인사라는 얘기다.

실세들이 밀실에서 미리 조직책을 찍어 놓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결국 상당수는 신당 붐을 일으키거나 민주정당으로 장식하는 들러리 역할을 한 셈이다. 또 조직책 선정기준과 관련, 의석 늘리기를 위한 당선을 최우선 잣대로 하다 보니 개혁성.참신성.도덕성 등은 뒷전으로 밀릴 소지가 충분하다.

여기에 당선을 사실상 보장받는 특정지역에선 정실(情實)에 가득찬 충성도나 연줄이 강조될 게 분명한 만큼 패거리 정치, 줄서기 정치의 탈피를 기대하기는 요원한 희망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구정치 시절의 상징어였던 '공천장사' '경매식 공천' '줄서기 정치' 가 2000년 새해에도 재연될지 모른다.

이래서야 무슨 정치개혁, 새 천년 새 정치가 가능하겠는가.

한나라당의 경우도 신당 행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당선 가능성을 우선으로 해 개혁성.참신성.전문성 등을 공천의 기준으로 앞세운 것도 흡사하다. 동시에 이회창(李會昌)총재와 그 측근들이 나서 영입과 인선을 하는 등의 부정적 행태도 마찬가지다.

계파를 인정하지 않겠다며 내놓은 지난해 말 8개 지역구 공천 내역은 사실상 나눠먹기식이었다. 여기에 자금이 달리면서 전국구 후보를 대상으로 한 특별당비 문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자금이 달린다고 공천장사를 한다면 구악 정치와 다를 게 무엇인가. 정치자금법 등을 고치는 제도적 장치로 문제를 풀어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여야가 아무런 개혁의 노력없이 이대로 공천에 임한다면 우리의 정치 장래는 암담할 수밖에 없다. 공천의 투명성.합리성이 전제되지 않는 총선은 출발부터 진흙탕 싸움으로 시작될 것이다.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 첩경은 투명하고 합리적인 공천임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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