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줄잇는 기업고발 사이트 소비자 보호 '첨단 무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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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미국의 평범한 회사원인 스콧 해리슨은 현재 미국 굴지의 은행인 체이스 맨해튼 은행과 소송을 벌이고 있다.

체이스 맨해튼이 발행한 신용카드를 갖고 있는 그는 6백50달러의 부당요금을 청구받고 7개월 넘게 항의를 계속했지만 해결이 안되자 바로 인터넷에 고발 사이트 두 곳을 개설했다.

'체이스 은행은 나쁜 놈(Chasebankssucks.com)' 과 '체이스 맨해튼은 나쁜 놈(Chasemanhattansucks.com)' 이 그 것이다. 이에 은행측은 자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소송을 제기해놓은 상태다.

지난해 일본의 한 회사원은 도시바의 서비스 담당 직원에게 폭언을 듣고는 이를 자신이 개설한 인터넷 홈페이지에 음성파일로 띄워 결국 도시바의 최고경영자로부터 공개적인 사과를 얻어냈다.

전세계적으로 인터넷 인구가 급증함에 따라 기업의 횡포와 부도덕성을 고발하는 인터넷 홈페이지가 급증하고 있다.

'사이버 공간' 에서의 권리찾기 운동은 소비자를 하나로 묶어 거대한 힘을 창출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계속 확산되는 추세다. 해당 기업들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는 없다며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 확산되는 기업고발 사이트〓대상 기업들마다 여러가지 형태의 고발 사이트가 개설돼 있어 고발 사이트 수가 몇개인지 정확히 통계가 잡혀 있지는 않다.

한 예로 미국의 대형 회사의 이름에다 'I hate(나는 미워한다)' 'sucks(나쁜 놈)' 이라는 단어를 붙여 검색해보면 전자의 경우 아메리카 온라인(AOL)이 7만7천5백여건, 후자의 경우 마이크로 소프트(MS)가 3만2천여건으로 각각 최대의 '고발' 건수를 기록하고 있다.

"AOL이 설비투자를 게을리하는 바람에 접속률이 야후 등에 비해 최근 크게 뒤떨어지고 있다. " "맥도널드 햄버거는 살만 찌게 만들고 정작 영양분은 다른 햄버거 체인점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체이스 맨해튼 은행 대부 담당자의 업무착오로 집을 날리게 됐다" 는 등 네티즌들의 하소연도 각양각색이다.

특히 최근에는 온라인 쇼핑이 급증하면서 전자상거래 관련 기업들을 대상으로 배달기일 지연.제품 파손 등을 고발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 힘얻는 소비자 권리찾기〓전문가들은 "인터넷이 생겨나기 전까지는 소비자가 전화나 편지로 아무리 불만을 토로해도 해결이 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면서 "인터넷이 억울한 소비자들에게 힘을 실어줬다" 고 말한다.

이들은 "인터넷상에서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 앞으로 소비자 권리찾기의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될 것" 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미국에서 고발 사이트를 개설하는 데 드는 비용은 약 1백달러에 불과하며, 유지비용도 매달 30달러 정도여서 손쉽게 이를 활용할 수 있다.

이처럼 네티즌들이 인터넷 기업고발 사이트로 힘을 얻게 되자 최근에는 소비자와 고발된 기업을 중재하는 사이트까지 생겨나고 있다.

◇ 기업들의 대응〓기업들은 이와 관련, ▶철저하게 무시하는 전략 ▶고발 사이트가 될 법한 도메인 네임을 선점하는 전략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거는 전략 등으로 맞서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고발사이트를 '사전봉쇄' 하기 위해 자신의 기업명에 'sucks' 'I hate' 'stinks(평이 나쁘다는 뜻)' 등의 단어가 붙은 도메인 네임을 미리 사버리는 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 체이스 맨해튼의 경우 지난해 chasesucks.com과 chasestinks.com이라는 도메인을 확보했다.

그러나 던킨 도너츠처럼 자사 홈페이지에 고객 불만 토로란을 별도로 만들어 방문한 고객에게 사과 편지를 보내고 경우에 따라 무료 도너츠 구입권을 선물로 주는 곳도 있다.

김현기.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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