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0만원대의 레이스 … 토종·수입차 정면승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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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3000만원대 승용차 시장에서 국내업체와 수입업체의 경쟁이 본격 시작됐다. 경쟁의 불씨를 댕긴 곳은 도요타코리아다. 이 회사는 지난달 20일 국내에 모델 4개를 출시하면서 3개 핵심 차종의 값을 3000만원대로 정했다.

이 때문에 두 가지 큰 변화가 생겼다. 수입차의 핵심 가격대가 5000만~7000만원대에서 3000만원대로 이동하고 있다. 또 그동안 수입차 시장을 일종의 틈새로 여겼던 국산차 업체는 수입차와의 정면 승부를 피할 수 없게 됐다.

◆수입차 시장 무게 중심 이동=도요타는 캠리를 3490만원에 출시했다. 한국에 들여오는 차종은 미국에서 파는 2.5L 모델 중 가장 상급 트림(세부 모델)인 XLE와 같다. 옵션이 비슷한 차를 미국에서 사려면 2만8000달러(약 3300만원)는 줘야 한다. 한국의 관세(8%)와 시장 규모를 생각하면 세계에서 차 값이 가장 싼 미국보다 더 저렴하다고 할 수 있다.

덕분에 도요타코리아는 공식 출시 보름 만인 5일 현재 무려 4800대가 계약됐다. 보름 계약치가 지난해 1년간 수입차 판매 순위 5위권에 해당하는 엄청난 기록이다.

이에 따라 수입차의 주력 가격대가 바뀌게 됐다. 수입차 시장에서 3000만원대 차량의 판매 비중은 지난해 2위까지 올랐다. 올 들어 4000만원대의 비중이 일시적으로 커졌지만 이는 혼다가 상반기에 주요 차종 값을 일시적으로 4000만원대로 올린 탓이 크다.

그러나 도요타의 등장으로 상황은 다시 바뀌었다. 도요타가 내년 중 월 700대만 팔아도 전체 수입차 시장에서 3000만원대 비중이 현재의 두 배 이상이 된다. 게다가 혼다도 주력 차종 가격을 3000만원대로 다시 내렸다. 그동안 수입차에서 대중차(엔트리급)와 고급차(럭셔리급)를 나누는 기준이 5000만원이었지만, 앞으로는 4000만원이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산차와 정면 승부 예상=지금까지 수입차 시장이 일종의 틈새라며 만만하게 봤던 국내 자동차 업체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최근 신차를 낼 때마다 값을 10~20%씩 올려 온 현대·기아차의 전략은 수입차와의 정면 승부라는 결과로 이어지게 됐다.

캠리 값은 현대차 쏘나타와 그랜저의 중간쯤이다. 특히 그랜저 Q270(2890만~3598만원)과 24일 출시되는 기아의 준대형 세단 K7 2.7(3030만~3850만원)과 겹친다.

캠리가 그랜저·K7의 핵심 판매 차종을 정조준한 셈이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인 RAV4 가격 역시 투싼(기아 스포티지)과 싼타페(기아 쏘렌토R) 디젤 모델의 중간쯤이다.

캠리 2.5의 비교 상대가 쏘나타인지, 그랜저 또는 K7의 어떤 모델이 될지는 속단할 수 없다. RAV4도 가솔린 엔진이라 디젤 SUV와 직접 비교는 안 된다. 하지만 도요타가 정면돌파를 통해 현대·기아차의 핵심 차종과 경쟁하려 한다는 게 중요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비슷한 가격대에 대안이 될 만한 수입차가 생겼다는 뜻이다. 게다가 중형 세단 분야의 강자인 르노삼성 SM5 신차도 내년 초 출시되기 때문에 경쟁은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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