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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삼칼럼] 정보화의 악마적 얼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엊그제 중앙일보 1면은 같은 SK그룹사원이지만 SK텔레콤 직원들은 얼굴에 희색이 가득한 반면 모기업인 SK㈜ 사원들은 오히려 풀이 죽어 있다는 대조적인 연말 풍경을 보도했다. 텔레콤 사원들이 연초에 받은 우리사주의 주가가 크게 올라 대개가 1억원 이상 가는 자산가가 되어 버린 데 따른 것이다.

어디 SK그룹뿐이겠는가.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이러한 횡재에 대한 자랑과 기대, 시샘과 낙망 등으로 해가 뜨고 지고 있다. 일본은 해마다 하나의 한자로서 그 해를 요약하고 결산해 오고 있다는데 우리도 그 방식을 빌려 올해를 한 글자의 한글로 표현해 본다면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돈' 일 것이다.

들뜨는 사람을 나무랄 수만도 없게 주위에서 벼락부자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억대의 재산이라면 바로 얼마 전만 해도 월급쟁이들이 평생을 개미처럼 일해야 이룩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단번에 그것도 별 힘도 안들이고도 억대의 재산가가 되는 세상이니 들뜨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사회에 거세게 불고 있는 정보화 바람, 인터넷 사업붐이 낳은 것임을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는 이런 바람, 이런 붐을 막아서는 안되고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 정보화는 국가의 성쇠를 좌우하는 과제가 된 지 이미 오래다.

그런 면에서 정보화바람이나 인터넷 사업붐은 분명히 긍정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긍정적 측면 이상으로 우리의 기반과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주목해야 하며 그에 관한 대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현재의 바람과 붐이 지닌 가장 부정적인 측면은 그것이 그렇지 않아도, 우리가 그 상실을 아쉬워해 온 성실.절제.정직과 같은 덕목과 가치를 더욱더 우리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개발독재에 의한 압축성장으로 일정한 경제적 성과는 거뒀지만 그 부작용으로서 성실.절제.정직과 같은 가치가 훼손되었음을 반성했던 게 바로 어제였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경제발전은 그러한 가치.덕목과 함께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바 있다. 그런데 정보화가 코스닥붐으로 이상스레 왜곡되면서 그만 그런 모처럼의 자각마저 증발돼 버렸다.

또 하나의 중대한 부정적 측면은 정보화로 우리 사회의 계층.학력.세대.지역간의 격차가 더 심화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중층구조를 이뤄 문제해결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갈갈이 찢겨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횡재에 대한 기대에 들떠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낙망과 체념의 한숨을 내쉬고 있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이런 돈바람에 대한 개탄이 땅이 꺼질 듯하다.

어쨌거나 현재의 바람과 붐이 우리 사회의 정보화를 촉진시키고 그 투자재원을 축적하는 불가피한 과정이라면 인내해 볼 만도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의 바람과 붐은 한마디로 언제 꺼질 줄 모르는 거품이요, 한탕주의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벤처란 문자 그대로 모험 아닌가.

모험이란 성공하면 그 성과가 크지만 그 가능성이 극히 작게 마련이다. 벤처기업은 미국의 실리콘밸리에서도 그 성공률이 1%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는 벤처란 그저 고수익 사업인 것처럼 인식돼 있고 더구나 아무런 새로운 기술의 개발이 없어도 신규사업이기만 하면 곧 벤처인 양 오해하고 있다.

이러니 2~3년내 거품이 꺼지면서 대공황이 닥칠 것이라는 불길한 예측이 나온다. 시장개입이나 간섭이라는 차원에서가 아니라 기대가 과장되고 실제가 왜곡된 게 분명하다면 정부는 이의 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마땅하다.

긴 눈으로 보면 국가간의 정보화 경쟁도 결국은 콘텐츠에 달렸다. 가령 우리가 아마존보다도 더 유명한 인터넷사이트를 보유했다 해도 우리 자신의 콘텐츠가 없다면 결국 거래품목은 외국 것일 수밖에 없다.

그 점에서 정보화의 중요성은 강조하면서 막상 정보화시대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원천이 되는 인문학과 문학의 위기가 방치되고 있는 것은 실은 정보화의 본질에 무지하다는 증거다. 정보화 경쟁의 궁극적 승패는 기술적 측면뿐 아니라 어느 나라가 깊이 있고 차별성 있는 콘텐츠를 다양하게 확보하고 있는지에 의해 판가름날 것이다.

정보화는 국가적 중대 과제다. 그러나 자칫하면 국내적으로는 사회갈등을, 국제적으로는 종속을 심화시킬 수 있는 악마적 얼굴도 지닌 과제임을 전국민에게 널리 인식시켜야 한다.

유승삼 중앙M&B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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