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1등 조선 한국 지키렵니다" 대우조선 윤길영 기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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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경남 거제시 아주동 1백30만평에 자리잡은 대우조선.

분주히 움직이는 골리앗 크레인을 배경으로 옥포만에 한 세기를 마감하는 해가 저문다.

선박 수출로 20세기 한국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맡았고 민주화 열풍이 불어닥칠 때 한국 노동운동의 메카였던 곳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겪으면서 대우그룹의 해체로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이 진행 중인 한국 경제의 명암을 안고 있는 현장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19년째 일하고 있는 윤길영(尹吉英.57)기선(技先.기능공 직급으로 반장급)이 한 세기를 보내면서 느끼는 감회는 새롭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용접기술을 배워 부산의 대한조선공사를 거쳐 대우조선 창업기인 지난 81년 입사했다.

입사하자마자 대우조선의 첫 작품인 화학제품 운반선(2만2천t급)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3백여척의 선박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다.

"지금은 장난감 정도로 생각되는 2만t급이지만 그 때만 해도 선박 진수(進水)기사가 신문에 크게 실리던 시절이었죠. "

배관공으로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10여년 동안 선박의 혈관인 각종 배관을 만들다 92년부터 회사 내 기술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개선이 필요한 각종 현장장비를 개발한 노력을 인정받아 대부분의 직원이 석.박사인 연구소로 옮긴 것이다.

尹씨는 지금까지 자동 각도 조절 용접기 등 1백여건의 특허를 출원한 공로로 지난 3월 대우그룹 발명왕에 등극한 노력파다.

초기에 그가 만든 배는 원유 운반선.바지선 등이었으나 지금은 컨테이너선.자동차 운반선.LPG선 등으로 바뀌었다.

크기도 이제는 30만t급의 초대형이다.

그가 대우조선소에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은 노사분규에 휘말렸던 87~91년 사이다.

집회에 참여하면서 회사측을 성토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후배들을 설득하고 있다.

"회사가 커갈 때는 노사간 충돌도 있었지만 지금은 함께 어려움을 헤쳐가는 공동체라는 것을 설명해 줍니다. "

대우조선은 87년 8월 첫 노사분규가 일어난 이래 91년까지 해마다 한달여씩 극심한 노사분규에 휘말렸다.

분규 현장에서 노조원들이 최루탄에 맞아 숨지는 등 3명의 희생자를 낸 악성 분규 현장이었다.

그러나 91년 2월의 골리앗 투쟁을 끝으로 노사분규는 사라졌다.

최근 그는 동료 연구원들과 함께 심해(深海) 무인 잠수정을 개발 중이다.

바다 밑의 각종 자원을 조사할 꿈에 부풀어 있다.

"노력하면 용접공 출신이 소형 잠수정까지 만들 수 있는데도 요즘 사람들은 힘든 일을 기피하는 것이 안타까워요. 새 천년에는 세계가 놀랄 기술개발에 매달리는 젊은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

92년부터 앓기 시작한 망막 종양으로 왼쪽 눈이 실명 상태여서 늘 안대를 해야 하지만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모른다.

거제〓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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